바닥에서도 아름답게
곽재구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거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마음으로 이 땅 위에
사랑의 입술을 찍을 날들은
햇살을 햇살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마음의 정겨움도 무시로 나누어
다시 사랑의 언어로 서로의 가슴에 뜬
무지개 꽃무지를 볼 수 있을까
미장이 토수 배관공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삿대질을 하며
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
한 송이의 꽃으로 무지개로 종소리로
우리 눈뜨고 보는 하늘에 피어날 수 있을까.
<미발표>
시인의 첫 시집(개정판)에 실려 있는 시입니다.
시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사평역에서’라는 시보다도
이 시를 좋아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 날은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두 돌을 축하합니다
멀리서 미약하나마 시 한편에 마음을 실어 보냅니다.
나날이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