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22.나무날. 맑음

조회 수 1609 추천 수 0 2007.03.04 16:28:00

2007. 2.22.나무날. 맑음


날이 저물자 낮이 왜 끝나야 하는지 슬픈 아이에게 엄마가 말했지요,
그래야 밤이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낮은 끝나지 않아. 다른 곳에서 빛나기 시작하지.”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은 어떤 것도 없으며
다만 다른 곳에서 시작하거나 다른 모습으로 시작한다 했습니다.
민들레 꽃씨는 어느 집 잔디밭으로 날아가 새로운 민들레를 피우고,
산은 봉우리를 넘어 밑으로 내려가서 골짜기가 되고,
파도는 모래에 부서져 바다에 스민 뒤 새로운 파도를 만들고,
폭풍이 끝나면 비는 구름이 되어 다른 폭풍을 만들지요.
구름은 흘러 흘러 다른 곳에 그늘을 만들러 가고,
낙엽은 땅에 들어가 새로운 나무와 새로운 잎이 나도록 돕고,
가을이 끝나면 겨울이 시작되고,
겨울이 끝나면 새봄이 시작되고...
“네가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달은 밤을 시작하러 떠나고
해는 새로운 낮을 시작하러 이곳으로 찾아올 거야.”

떠나는 이가 있는 반면 이곳에 남아야 하는 이가 있지요.
이곳이 삶터인 공동체 아이가
오늘 울음을 삼켜가며 꺼이꺼이 두어 시간을 울었습니다.
자정이 넘고 있었지요.
상설 3년을 보내고 맞은 4년차, 이제 좀 가늠도 하겠고,
그래서 잠시 숨을 고르는 한 해를 삼으려니
학교는 더딘 걸음에 더욱 조용하겠는데,
도시로 친구들을 보낸 산골소년의 마음은 허하기만 합니다.
“내년이라고 달라진다는 보장도 없잖아.”
저가 보기에도 이런 삶과 이런 학교를 오는 이들이
결코 많지 않단 말이지요.
사람살이가, 우리네 살이가, 그렇게 가고 오는 거라고,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속을 끓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샬롯 졸롯토의 나무판그림을 보여주며 아이를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엄마,
달이 뜨고 해가 지고 그런 자연은 단순하고 늘 꼭 같은 현상이지만,
사람 관계는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다 달라.”
아이의 우울은 그렇게 그쳐지지 않고 있었지요.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말고
엄마가 옳다는 길을 가라하지 않았니?
너도 엄마의 길을 좇아 산대면서?”
그건 또 그렇답디다.
다만 서글프다고.
“말이 좀 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엄마가 좋은 친구이기도 하지만 또래랑 할 일이 있거든.”
“완전히 홈스쿨링이네.”
“그렇다고 읍내 학교를 가는 건 잃는 게 더 많으니까...”
저 나름대로 이리저리 상황을 짚어보다가 퍼뜩 생각난 듯 외쳤지요.
“종훈이를 좀 교육화시켜 줘!”
산골에 아이가 없으니 공존할 수밖에 없다가
누군가 나타나면 바로 깨어지는 관계인 둘은
그래도 적적한 산골살이에 위로가 될 밖에요.

아이가 이 시기를 어떻게 넘기며 성장해 갈지...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모진 에미 만난 것도 저가 안아야할 팔자(?)일 겝니다, 별수 없는.
마음에 휑하데요.
괜스레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옮겨갈까, 마음을 얼른 닫았습니다.
저렇게 사유할 줄 아는 아이면 잘 커나가지 않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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