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7.물날. 마른 눈발 날리는 아침
마른 눈입니다.
새벽에 내렸던 눈이 바람에 포슬거리는 아침입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날리고 또 날립니다.
아이들이 신문지로 연을 만들었습니다.
옥상에 올라 날렸지요.
“엄마 아빠가 오래 살게 해주세요...”
꼬깃꼬깃 소원문도 달았습니다.
정월대보름, 자신의 액을 쓴 연을 날리다
마지막 순간 줄을 끊으면 뵈지 않는 곳까지 연이 날았지요.
그러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새해를 살아감직한 힘이 꿈틀거렸을 겝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겨울놀이의 끝이었고,
어른들은 여유로왔던 긴 겨울과 작별하기 못내 아쉬워
귀신의 날로 하루를 더 미적거리다
구들장 뒤로 하고 논밭으로 걸음을 떼던 게 대보름이었지요.
권정생샘의 동화 한 편을 아이들과 읽습니다.
미사나 영성체(예수님의 몸과 하나가 되는 것) 같은 걸
왜 사람끼리만 해야 하는지 괴로워진 신부님과,
하느님도 성당 안에만 있지 말고
산 중턱 저만치 조그맣게 보이는 저런 집에 나와 살면 좋겠다는 강아지가
같이 농사짓고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폭격으로 집이 불타고 총으로 서로 죽이고 식구들이 헤어진
어린 날의 기억을 가진 신부님과
사람들이 놓은 덫에 한 다리를 잃은 강아지였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강아지나 토끼나 산에 사는 노루나 늑대나 호랑이나
모든 짐승들은 사람들이 벌이는 그 무시무시한 전쟁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잖아요.
총칼도 안 만들고, 핵폭탄도 안 만들고, 거짓말도 안 하고,
화도 안 내고, 몰래 카메라가 없어도 도둑질도 안 하고,
술주정뱅이도 없고, 가짜 참기름도 안 만들고,
덫을 놓아 약한 짐승도 안 잡고,
쓰레기도 안 버리고요.”(같은 책에서)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영동을 걷고 있는 지금,
아이들과 나누기에 참 좋은 이야기였지요.
오래 전 떠났다 장례차를 타고 고향에 돌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침 녘 운구차를 따라 몇 대의 차들이 줄줄이 들어오더니
저 건너 앞산에 굴삭기가 왔다 갔다 하고,
천도제가 올려지는가 싶더니
해가 서산으로 향할 때까지도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못내 궁금했겠지요.
“함 가 봐라.”
냅다 달려간 아이들은 떡을 얻어 먹고
또, 어떤 이의 죽음인지 속속들이 얻어 듣고 왔습니다.
“지금 밥할 건데, 이것 좀 개줄 수 있어?”
저녁에는 아이들이 걷어온 빨래를 갰지요.
“종훈아, 내가 가르쳐주께.”
형아가 가르쳐줘가며 참하게 다 개놓았습니다.
이 아이들과 올 한 해도 참말 재미날 것 같습니다.
아이들 삶이 사람살이로부터 외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지요.
그것이 죽음의 의식이든 태어남의 환희든 나날의 일상이든.
살아가는 이야기와 살아가는 움직임 속으로 아이들도 같이 뒹구는,
삶터와 배움터가 하나인 ‘산골공동체배움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