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7.물날. 마른 눈발 날리는 아침

조회 수 1168 추천 수 0 2007.03.21 20:03:00

2007. 3. 7.물날. 마른 눈발 날리는 아침


마른 눈입니다.
새벽에 내렸던 눈이 바람에 포슬거리는 아침입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날리고 또 날립니다.

아이들이 신문지로 연을 만들었습니다.
옥상에 올라 날렸지요.
“엄마 아빠가 오래 살게 해주세요...”
꼬깃꼬깃 소원문도 달았습니다.
정월대보름, 자신의 액을 쓴 연을 날리다
마지막 순간 줄을 끊으면 뵈지 않는 곳까지 연이 날았지요.
그러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새해를 살아감직한 힘이 꿈틀거렸을 겝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겨울놀이의 끝이었고,
어른들은 여유로왔던 긴 겨울과 작별하기 못내 아쉬워
귀신의 날로 하루를 더 미적거리다
구들장 뒤로 하고 논밭으로 걸음을 떼던 게 대보름이었지요.

권정생샘의 동화 한 편을 아이들과 읽습니다.
미사나 영성체(예수님의 몸과 하나가 되는 것) 같은 걸
왜 사람끼리만 해야 하는지 괴로워진 신부님과,
하느님도 성당 안에만 있지 말고
산 중턱 저만치 조그맣게 보이는 저런 집에 나와 살면 좋겠다는 강아지가
같이 농사짓고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폭격으로 집이 불타고 총으로 서로 죽이고 식구들이 헤어진
어린 날의 기억을 가진 신부님과
사람들이 놓은 덫에 한 다리를 잃은 강아지였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강아지나 토끼나 산에 사는 노루나 늑대나 호랑이나
모든 짐승들은 사람들이 벌이는 그 무시무시한 전쟁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잖아요.
총칼도 안 만들고, 핵폭탄도 안 만들고, 거짓말도 안 하고,
화도 안 내고, 몰래 카메라가 없어도 도둑질도 안 하고,
술주정뱅이도 없고, 가짜 참기름도 안 만들고,
덫을 놓아 약한 짐승도 안 잡고,
쓰레기도 안 버리고요.”(같은 책에서)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영동을 걷고 있는 지금,
아이들과 나누기에 참 좋은 이야기였지요.

오래 전 떠났다 장례차를 타고 고향에 돌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침 녘 운구차를 따라 몇 대의 차들이 줄줄이 들어오더니
저 건너 앞산에 굴삭기가 왔다 갔다 하고,
천도제가 올려지는가 싶더니
해가 서산으로 향할 때까지도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못내 궁금했겠지요.
“함 가 봐라.”
냅다 달려간 아이들은 떡을 얻어 먹고
또, 어떤 이의 죽음인지 속속들이 얻어 듣고 왔습니다.
“지금 밥할 건데, 이것 좀 개줄 수 있어?”
저녁에는 아이들이 걷어온 빨래를 갰지요.
“종훈아, 내가 가르쳐주께.”
형아가 가르쳐줘가며 참하게 다 개놓았습니다.
이 아이들과 올 한 해도 참말 재미날 것 같습니다.
아이들 삶이 사람살이로부터 외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지요.
그것이 죽음의 의식이든 태어남의 환희든 나날의 일상이든.
살아가는 이야기와 살아가는 움직임 속으로 아이들도 같이 뒹구는,
삶터와 배움터가 하나인 ‘산골공동체배움터’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54 4월 물꼬stay 닫는 날, 2019. 4.21.해날. 맑음 옥영경 2019-05-20 17872
6653 2012. 4. 7.흙날. 달빛 환한 옥영경 2012-04-17 8333
6652 민건협 양상현샘 옥영경 2003-11-08 5063
6651 6157부대 옥영경 2004-01-01 4705
6650 가족학교 '바탕'의 김용달샘 옥영경 2003-11-11 4576
6649 완기의 어머니, 유민의 아버지 옥영경 2003-11-06 4534
6648 대해리 바람판 옥영경 2003-11-12 4518
6647 흙그릇 만들러 다니는 하다 신상범 2003-11-07 4484
6646 뚝딱뚝딱 계절학교 마치고 옥영경 2003-11-11 4459
6645 너무 건조하지 않느냐길래 옥영경 2003-11-04 4430
6644 이불빨래와 이현님샘 옥영경 2003-11-08 4406
6643 출장 나흘 옥영경 2003-11-21 4279
6642 122 계자 닫는 날, 2008. 1. 4.쇠날.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1-08 4218
6641 2008. 4.26.흙날. 바람 불고 추웠으나 / 네 돌잔치 옥영경 2008-05-15 3794
6640 6월 14일, 류옥하다 생일잔치 옥영경 2004-06-19 3756
6639 123 계자 닫는 날, 2008. 1.11.쇠날.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1-17 3690
6638 6월 18일, 숲 속에 차린 밥상 옥영경 2004-06-20 3687
6637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2006-05-27 3649
6636 12월 9일, '대륙보일러'에서 후원해온 화목보일러 옥영경 2004-12-10 3548
6635 2007.11.24-5. 흙-해날. 맑음 / 김장 옥영경 2007-12-01 351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