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26.흙날. 맑음 / 찔레꽃방학

조회 수 1284 추천 수 0 2007.06.15 12:46:00

2007. 5.26.흙날. 맑음 / 찔레꽃방학


찔레꽃이 흐드러지다 못해 온 산마을을 향내로 흠뻑 적실 무렵
‘찔레꽃방학’을 합니다.
오늘부터라지요.

된장 담았습니다.
날마다 아침 저녁 여닫던 항아리였습니다.
햇볕 닿고 바람 닿아
메주를 담은 간물이 나날이 졸아들며 까매져가고 있었지요.
메주를 건져 으깼습니다.
남은 물이 간장인 거지요, 조선간장.
간밤엔 류옥하다 외가에서 어르신들이 오기도 하였습니다.
교통사고로 손이 다쳤던 할머니의 성치 않은 손 대신
류옥하다가 한 몫 단단히 합니다.
하다의 외할머니는 그런 와중에도 콩을 삶아 으깨도 오셨습니다,
으깬 메주랑 섞는다고.
달골 햇발동 욕실 청소를 위해 당신이 잘 쓰는 도구들도 사오셨고
가마솥방에서 쓸 앞치마도 둘 만들어오셨으며
쓰기 좋다고 설거지용 수세미도 당신 말 잘 듣는 것들을 챙겨오셨지요.
이것저것 밑반찬도 잔뜩 실어오셨습니다.
오는 걸음 때마다 빠질 수 없는,
말린 생선들을 한동안 또 잘 먹겠습니다.
농사지은 양파도 그득 실어오고
물김치도 한동안 두고 먹을 양이지요.
해 오신 두 말이나 되는 쑥인절미는
온 마을에 돌렸습니다.
농기계특별강좌가 오전에 큰 마당에서 열려
함안어르신한테 남정네들은 농기구다루는 법을 다시 잘 익혔지요.
어르신들 그늘 넓기는 늘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어르신들 보내고,
아, 사흘 머물고 효진샘도 서울로 돌아갔지요.
여름 잘 날 옷을 챙겨왔던 지난해 여름처럼
올해도 그렇게 보따리 남겨놓고 갔습니다.
오후에는 식구들이 고래방대청소를 했네요.
공사가 끝난 뒤처리이면서 그간의 묵은 먼지 털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종대샘이 수세미까지 챙겨 물비누로 문질렀고
삼촌은 그것을 닦았으며
류옥하다는 거울이며를 닦고
저는 사람들이 놓친 구석을 치웠지요.
땀 풀풀나는 오후였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곰이 되고 싶어요>.
덴마크의 애니메이션 거장 야니크 하스트룹 감독의 작품입니다.
대해리영화관에 커다랗게 북극이 펼쳐졌습니다.
곰에게서 길러진 에스키모소년이 곰이 되고 싶었고
마침내 그리 된 이야기랍니다.
그래서 누구는 “진정한 의미의 ‘성장’에 대한 소박하고도 진중한 고찰”이라고 했었지요.
그러나 내 슬픔을 위해서 다른 아이를 뺏어 채운다면
그 슬픔은 또 어찌 합니까
(곰 부부가 아이를 잃고 사람의 아이를 데려갑니다).
영화 ‘코러스’콘서트에서 들었던 브뤼노 꿀레의 음악을 다시 듣는 행운과
마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여백의 장점이 잘 살려진 광활한 북극이 주는 감동보다
그게 오래 짠했습니다.
에미라 그런 걸까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194 6월 19일 해날 맑음 옥영경 2005-06-22 1281
1193 2006.3.9.나무날. 흐릿 / 조릿대집 집들이 옥영경 2006-03-11 1281
1192 2006.5.11.나무날. 흐림 옥영경 2006-05-13 1281
1191 2008.10.21.불날. 아침 안개 걷히고 맑다 옥영경 2008-10-28 1281
1190 143 계자 여는 날, 2011. 1. 9.해날. 맑음 옥영경 2011-01-12 1281
1189 2011. 6. 9.나무날. 흐린 하늘 / 단식 4일째 옥영경 2011-06-18 1281
1188 10월 10일, 가을소풍 옥영경 2004-10-14 1282
1187 7월 27일 물날 꺾이지 않는 더위 옥영경 2005-08-01 1282
1186 108 계자 첫날, 2006.1.2.달날.맑음 옥영경 2006-01-03 1282
1185 2008. 8.25.달날. 맑음 옥영경 2008-09-15 1282
1184 2011.12.29.나무날. 정오 개다 옥영경 2012-01-03 1282
1183 3월 6일 해날 맑음 옥영경 2005-03-06 1283
1182 3월 12-3일, 밥알모임 옥영경 2005-03-17 1283
1181 5월 18일 물날 비 꼼지락 옥영경 2005-05-22 1283
1180 2008. 4.25.쇠날. 맑음 옥영경 2008-05-11 1283
1179 2012. 4.11.물날. 비 옥영경 2012-04-17 1283
1178 12월 22일 물날 흐림 옥영경 2005-01-02 1284
1177 2005.12.15.나무날.눈 쌓인 맑은 아침 / 생겨 먹길 그리 생겨 먹었다? 옥영경 2005-12-17 1284
1176 2006.4.15.흙날. 흐림 옥영경 2006-04-18 1284
1175 2007. 4. 2.달날. 옅어진 황사 옥영경 2007-04-16 128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