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11.달날. 벌써 여름 한가운데

조회 수 1260 추천 수 0 2007.06.26 04:57:00

2007. 6.11.달날. 벌써 여름 한가운데


아이들도 어른들도 종일 일했습니다.
겨울이 더디 지나는 이곳이라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지요.
난방용 물건들을 오늘에야 정리했답니다.
어디 게으름 때문만일라구요.
워낙 손이 모자란 이곳이지요.
창문에서 비닐이랑 고정 철사를 빼면
아이들은 그것을 한 곳에 모아두고 비닐을 갰습니다.
둘이서 마주 잡고 개는 법을 가르쳐주었더니 곧잘들 했지요.
비닐과 철사를 종이상자에 담아 테이프로 붙이고
앞면에 ‘겨울창문비닐’이라고 써서 화장실 뒤 겨울용품 창고에 두었습니다.
일을 할 때는 뒷정리까지 확실히 하고
다음에 또 써야 하니 알기 쉽게 표시도 해서 두는 거라고
상범샘이 잘 일러주었지요.
오후에는 난로를 치웠습니다.
부엌 책방 사무실에 있던 연탄난로들입니다.
철거해서 밖으로 빼면
아이들은 남은 연탄재를 갖다버리고 난로 주위를 쓸었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닦기까지 하였습니다.

저녁에 읍내에선 생명평화지역모임이 있었지요.
고전을 읽으며 영혼을 깨우고 있습니다.
차차 뭔가 할 테지요.

한 밤에 전주 갑니다.
문상입니다.
읍내 나가 있던 걸음으로 바로 갔지요.
종대샘의 아버님이 오랜 병상을 접으셨습니다.
한 사람이 가고 또 누군가 왔겠지요...
망인을 알지 못할 땐 상주 앞에만 나아간다는데
공동체에서 같이 사는 식구의 일이라 고인 앞에 향불 피우고 재배했습니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에서
산 사람들은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죽음의 자리에서 모두 삶을 이야기 합니다.
죽음과 삶이 그리 마주하고 있었지요.
사는 일은, ‘일상’은, 그렇게 힘이 세지요.
만발한 찔레꽃 그늘 길을 따라 좋은 계절에 가셨다는 것도 위로가 되려나요.
떠나는 이가 주는 가장 커다란 선물을 어김없이 받습니다.
“잠깐!”
정신없이 삶에 휘둘리다 잠시 호흡해보라는 말...
낮에 그토록 덥던 기온도 밤 그늘에 장사 없지요.
찬 병원 건물 어둔 담벼락에 기대서서
잠시 눅눅해진 허허로운 삶의 시간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빈소를 나오며 걸음을 멈추고
문득 자신의 삶을 누군들 낯설게 쳐다보지 않을지요.
운전이 퍽이나 힘들었어도 오길 잘하였습니다.
경사는 놓쳐도 조사는 잘 챙겨야겠다 싶데요.
다는 못하고 살아도 이런 것 정도는 해야지 싶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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