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14.나무날. 비

조회 수 1178 추천 수 0 2007.06.28 10:08:00

2007. 6.14.나무날. 비


이른 새벽 밭에 나갑니다,
비가 다녀가고 무슨 일들이 있을까 하고.
땅을 차올랐던 머리들이 우르르 떡잎을 내고 있었습니다.
싹이 나는 일, 마치 한 번도 본 일이 없던 일처럼
마음이 일렁였지요.
‘기적’, 아마도 그런 것일 겝니다.
어떤 일이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를 빚었을 때
그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 기적일 테지만,
생명이 나고 자라는 일은 상식의 범주이고 일상의 범주이나
동시에 그것이 가져오는 경이로 보자면 충분히 기적이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거기 비가 내립니다.
비님이 치맛자락 끌며 걸어가십니다.

한 아이의 생일입니다.
조촐한 생일잔치가 있었습니다.
“체 게바라 생일도 오늘인데...”
한 혁명가에 대해, 그가 꾸었던 꿈이 무엇이었던가,
잠시 반찬이 되기도 합니다.
“아마 안네 프랑크도 오늘이었을 걸?”
나찌 치하 암스텔담의 은신처에서 썼던 그의 일기를
우리 아이들도 다 압니다.
“오늘 또 봐야지.”
이런 게 또 읽기 계기도 되네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스토의 생일도 이날입니다.
남북전쟁의 큰 계기가 되었던 책이지요.
이런 것이 같은 날 생일을 맞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데요.
관찰을 통해 학습된다는 Bandura의 모델링이론처럼
한 아이가 살아갈 삶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지도 않을지요.

저녁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되게 밝다!”
“무슨 별예요?”
서쪽하늘에 왕방울만한 별이 우뚝 선 동상처럼 홀로 빛이 진하였습니다.
사자자리의 레굴루스(Regulus)나 토성(Saturn)도 무척 밝으나
단연 눈에 띄는 저것은 금성(Venus)입니다.
다른 밝은 별들보다도 수십 배 밝지요.
“저렇게 밝은 별이 있나...”
그래서 별이 아니라 무슨 다른 용도로 켜놓은 등불같은 거라고도 하고
지나는 비행기일지도 모른다고도 하고
인공위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요.
망원경으로 보면 초승달 모양입니다.
워낙 밝아 맨눈으로 봐도 빛이 약간 찌그러져 보일 정도이지요.
그가 바로 가을부터는 새벽 동쪽하늘에 보이는 바로 그 별이 그 별입니다요.
지금 밖에 한 번 나가 보지 않으실래요?

“한산하니 좋으냐?”
간간이 물꼬의 후원회원들,
특히 선배이기도 한 논두렁님들이 안부를 물어옵니다.
“형은 어찌 지내요?”
“군자는 홀로 있음을 삼가는 법이다.”
홀로 농사를 짓고 있는 선배다움입니다.
혼자 있어도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듯이 처신한다는 말이겠습니다.
외롭지 않다는 말로도 들리고
혼자 살아도 늘어지지 않는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곁에 아무도 없는 시간조차
잠자리가 아니고는 누워본 적이 없다는 어른을 알고 있지요.
긴장이겠습니다.
그런 곧음으로 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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