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아암 알고 말고. 희수 희원이랑 상계동 3인방! 거기서 홍대 앞까지 그 먼 길을 왔던 열정적인 아이들. 너희들의 어머니 변명옥님과 김정원님도 기억한다, 성함은 좀 가물거린다만. 물론 연극도 기억하지, 그때 무려 네 편이나 무대에 올렸더랬다. 니네가 한 게 <왜?>였지? 그때 다른 모둠의 <사람만으론 살 수가 없어!>를 했던 5학년 소희는 중고생 때도 계속 이곳에 자원봉사를 오는 '새끼일꾼' 역할을 했고 지금도 스물셋 대학생으로 품앗이일꾼(자원봉사)으로 오고 있다. 올 여름도 다녀갔고.
쓰기 시작하니 많은 생각이 나네. 한참 어렸던 네 동생도 많이 컸겠구나. 그 사이 나는 열한 살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
겨울 계자에 자원봉사 오면 좋겠구나. 아, 그래 그래, 여기 대해리에서 처음 봄 계자를 했던 그때, 그때 니네가 왔더랬다, 침낭까지 챙겨.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 때보다는 좀 낫지. 어쨌든 이젠 아주 여기서 살고 있으니까.
정말 그리우이. 희수 희원이한테도 안부 전해다고. 이민을 갔단 얘기도 얼핏 들었던 듯한데...
소희야, 이제야 글 봤네. 이른 아침이다. <왜?>는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성찰이었다. 지윤이네들이 한 거지. 포포프의 말 없는 그림동화가 모티브가 되었더랬다. 니네가 한 건, 그게 민기선수랑 같이 한 거잖여, <사람만으론 살 수가 없어>라는 노래극이었지, 말 그대로 뮤지컬 같은 거. 사람들에게 화가 난 숲 속 동물들 이야기였다. 아냐? 이상하게도 노래극은 꼭 젤 노래 안되는 모둠과 하게 되더라, 하하. 아, 아이들과 했던 시간은 어쩜 이렇게 빛나는 날들이냐. 겨울 계자를 기다린다. 이제 희중 무열과 함께 네 이름자도 주축으로 넣으면 되냐?
네가 중학생 때던가 홈페이지에 안부를 남기지 않았더뇨?
알지, 아암 알고 말고.
희수 희원이랑 상계동 3인방!
거기서 홍대 앞까지 그 먼 길을 왔던 열정적인 아이들.
너희들의 어머니 변명옥님과 김정원님도 기억한다,
성함은 좀 가물거린다만.
물론 연극도 기억하지,
그때 무려 네 편이나 무대에 올렸더랬다.
니네가 한 게 <왜?>였지?
그때 다른 모둠의 <사람만으론 살 수가 없어!>를 했던 5학년 소희는
중고생 때도 계속 이곳에 자원봉사를 오는 '새끼일꾼' 역할을 했고
지금도 스물셋 대학생으로 품앗이일꾼(자원봉사)으로 오고 있다.
올 여름도 다녀갔고.
쓰기 시작하니 많은 생각이 나네.
한참 어렸던 네 동생도 많이 컸겠구나.
그 사이 나는 열한 살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
겨울 계자에 자원봉사 오면 좋겠구나.
아, 그래 그래, 여기 대해리에서 처음 봄 계자를 했던 그때,
그때 니네가 왔더랬다,
침낭까지 챙겨.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 때보다는 좀 낫지.
어쨌든 이젠 아주 여기서 살고 있으니까.
정말 그리우이.
희수 희원이한테도 안부 전해다고.
이민을 갔단 얘기도 얼핏 들었던 듯한데...
간간이 이렇게 소식 전해다고.
어머니께도 안부 전해드리고.
좋은 가을날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