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은 나입니다, 이 가을날
내가 가진 모든 언어로
내가 나의 신입니다...'
<사람의 가을>을 읽습니다.
새벽 깊도록 마주 이야기하던 햇발동에
보름이 더 지난 가을이 짙어 이울겠습니다.
다녀오고도 인사 한 줄 남기지 못하고
벼 베러 가겠단 약속도 못 지켰네요.
그리고 사람의 가을을 읽습니다.
'저 낱낱이 하나인 잎들
저 자유로이 홀로인 새들...'
영동 어느 산모롱이서 억수비가 퍼붓고
대전 떠나오는 버스 창밖으로 가는 빗줄기가 이어졌지요.
그렇게 어두워 오면서 노곤하고도 마음 넉넉해져 돌아오면서
참, 그 산골의 일이, 물꼬의 일이, 옥샘의 일이
깊어 멋대로 헤아릴 수 없는 길이란 걸 생각했습니다.
깃들어 살면서 살아가면서
마중하고, 대접하고, 어우러지고,
마주하고, 다독이고, 떠나보내고,
남겨지고, 남아...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밀물과 썰물을 보았을까요?
산 같고 숲 같은 물꼬의 생채기는 얼마나 많은 날을 아물었을까요?
'저 잎과 저 새를
언어로 옮기는 일이, 이 가을
산을 옮기는 일만큼 힘이 듭니다
저 하나로 완성입니다...'
자잘한 저의 말들 또한 저 잎새를 못 따라가는 가을
쌀알 같은 옥샘의 제자들이 풍년입니다.
하다의 결고운 심성이 풍년입니다.
사람들 치르면서 깨져나간 항아리처럼
마음 한 켠 소란하고 분주해도
인연과 쓰임을 챙겨 생각하는 옥샘의 가을이
낡아 빈 데 많은 물꼬의 가을이
그대로 완성이길 기도합니다.
말, 맘, 손, 발, 해, 달, 흙
언제나 따사롭고 평화로우소서.
마치 밤새 쓰고 구겨 던지는 연애편지처럼 말입니다.
시간이 그리 갔습니다.
수민이는 결국 산청은 가게 되는 건지,
가을날의 문학수업은 어떠신지,
아침 저녁 '그거' 한 숟가락씩 챙기면서 늘 생각합니다.
참 좋은 선물입니다.
저도 다른 이들에게 바로 그런 걸 선물로 줘야지 싶다지요.
사람들이 우르르 다녀갔습니다,
자원봉사도 오고, 이사를 생각하는 가정도 있었지요.
그리고 텅빈 대해리에서 잠시 기우는 가을볕을 몇 걸음 걷다 들어왔습니다.
고마운 시간입니다.
살아있어서, 또 그렇게 만나서, 그리고 만날 거라서
더 고마운 날들입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름 세 자를 읽으며 반가웠고
이름 석 자를 쓰면서 다사로왔음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