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2.쇠날. 쬐끔 흐리네요

조회 수 1209 추천 수 0 2007.10.17 18:47:00

2007.10.12.쇠날. 쬐끔 흐리네요


용인의 요한나님 댁에 갔습니다,
천연세제 만들러.
수원 나들목에서 5분이면 된다는 거리를
좀 헤매다 10시께 들어갈 수 있었지요.
학교에 사정이 생겨
당신이 마음을 내어 기꺼이 오신다던 걸음을 멈추라 하고
저희 식구 몇이 간 것입니다.

비누가 갖는 일반적인 특성과
천연비누와 재료들에 대한 이해,
그렇게 강의가 진행된 뒤 물비누를 만들기로 결정했지요.
아무래도 주방세제로 젤 많이 쓰이니.
실습은 점심을 먹은 뒤 하자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낯선 도시의 풍경이 가을이라 그런지 아득합디다.
에버랜드가 있고 민속촌, 그리고 아파트로 채워진 이 도시는
이 가을 냄새로 기억될 듯합니다.

팜유와 코코넛유를 섞고
물에 녹인 가성가리를 기름 온도와 맞춰 거기 부어
블랜드로 열심히 돌렸지요.
거품이 오르고 가라앉고를 반복하며 투명해진다는데
오늘은 구름이 좀 낀 날씨 탓인지 부풀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거품이 일 때 뜨거운 물에 설탕을 녹여 붓고
사이 사이 잘 스미도록 주걱 길을 만들어 주었지요.
이 원액과 물을 1:1비율로 섞으면 물비누!
“가성가리 녹이는 물에 쌀뜨물 발효액을 섞어서 하면...”
그가 한 많은 실험의 과정을 듣습니다.
한 사람의 오랜 시간의 결과를
앉아 받으니 민망하고 또한 고맙기 더했지요.

실제 작업하는 시간은 오래지 않았으니
만드는 전과 후에 인간과 환경에 대해 나누는 얘기가
오히려 강의의 핵심인 듯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야기도 하지요.
살아가는 이야기는 때로 비루하나 어쩌겠는지요.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지요,
어떻게든 윤기를 내며.
문득 이 가을 좀 궂은 날이 묘하게
(꼭 묘한 것도 아니겠다. 김훈의 글은 가을날을 닮았다. 그 아득함이)
김훈의 <남한산성>을 떠오르게 합니다.
“길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해서 마음과 세상이 한 줄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삶의 길은 열릴 것이므로, 군사를 앞세워 치고 나가는 출성과 마음을 앞세워 나가는 출성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먼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김상헌은 생각했다.”(p.199)
사는 일이 별 길이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근근이 살아가는 인간세가
눈물겨울(시인의 이름도 잊었네요) 것도 없습니다.
다만 길이 있어 가는 거지요.
착하고 순하게 걸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도시를 떠난 지 오래여 길을 나서는 시간에 서툴렀습니다.
하필 퇴근시간으로 5분이면 될 거리를 한 시간여에 빠져나오고
갈수록 태산, 고속도로도 막혔습니다.
윽, 쇠날 저녁 길 위입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대해리로 들었네요.
물론 만든 물비누를 안고 왔지요.
쌀가마니와 김칫독, 그리고 이것이 쟁여진 곳간을 보며
산골 겨울이 덜 춥겠습니다.
혜금샘, 다시 고맙습니다.
가난한 산골살이가 이런 그늘들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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