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4.해날. 맑음

조회 수 1232 추천 수 0 2007.10.26 07:05:00
2007.10.14.해날. 맑음


불현듯 생각이 나서 93년에 신판이 나온
솔출판사의 <토지>(박경리)의 서문을 펼쳤습니다.

사정에 의해 1989년 가을부터 나는 인지를 발부하지 않았고 『토지』의 출판은 중단 상태로
들어갔다. 문학을 포기할 생각도 해보았고 서점에 『토지』가 꽂혀 있는 것을 보면 심한 혐오감에
빠지기도 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은 꽤 오랫동안 나를 침잠하게 했으며
내 문학이 얼마나 가벼운 존재인가를 깨닫게도 했다. 그리고 독자들도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
하며 출판 중단을 비난하는 내 주변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고 시간을 응시하며 겨울나무가
바람에 몸을 흔들며 고엽을 떨어뜨리듯 나 역시 새봄을 맞기 위하여 분노의 쓰레기를 떨꾸려고
호미를 들고 텃밭에 나가곤 했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 바람에 드러눕는 풀잎이며 눈 실린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우짖는 작은 새, 억조창생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아름다음과 애잔함이 충만된
이 엄청난 공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일사불란한 법칙 앞에서 나는 비로소 털고 일어섰다.
찰나 같은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던 것이다.
...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 그리고 침잠,
시간에 대한 응시 뒤에 그는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
시간에 대한 응시,
시간에 대한 응시,
시간에 대한 응시...
시카고에서 띄운 글월 가운데 이렇게 쓴 부분이 있었더랬습니다.

며칠 전엔 푸새를 했습니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겠지요.
풀을 쑤려니 통밀 밖에 없기 밥을 망에 걸러 풀물을 냈습니다.
손바느질을 해서 만든 면지갑을 쪼물쪼물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못하는 대신 다른 천에 말아 한참을 꾹꾹 밟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복잡했던 일들이 자리를 찾아가더이다,
상처가 아물듯 노여움이 희미해지듯.
나이를 더할수록 시간에 기대 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시간은 힘이 세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014 2010. 8.22.해날. 오늘도 무지 더웠다 / 영화 <너를 보내는 숲> 옥영경 2010-09-07 1218
5013 2009. 1.20.불날. 봄날 같은 볕 옥영경 2009-01-31 1218
5012 2008. 7.13.해날. 맑음 옥영경 2008-07-27 1218
5011 108 계자 닫는 날, 2006.1.16.달날.흐림 옥영경 2006-01-19 1218
5010 7월 4일 달날 끝없이 비 옥영경 2005-07-13 1218
5009 6월 13일 달날 맑음 옥영경 2005-06-17 1218
5008 152 계자 닫는 날, 2012. 8. 3.쇠날. 맑음 옥영경 2012-08-05 1217
5007 2011. 7.20.물날. 내리 폭염 옥영경 2011-08-01 1217
5006 2011. 7.14.나무날. 오거니가거니 하는 빗속 구름 뚫고 또 나온 달 옥영경 2011-08-01 1217
5005 2009.12.15.불날. 흐리다 맑음 옥영경 2009-12-28 1217
5004 2009. 5.18.달날. 맑음 옥영경 2009-06-03 1217
5003 2007. 9. 1.흙날. 구멍 뚫린 하늘 옥영경 2007-09-23 1217
5002 2006.4.30-5.4.해-나무날 / 자율학교였단다 옥영경 2006-05-09 1217
5001 2005.11.28.달날.맑음 / 돌아온 식구 옥영경 2005-12-01 1217
5000 7월 9일 흙날 비, 비 옥영경 2005-07-16 1217
4999 159 계자 사흗날, 2015. 1. 6.불날. 소한, 흐리다 갬 옥영경 2015-01-12 1216
4998 2011.11.11.쇠날. 흐리다 그예 비, 그리고 달빛 교교한 밤 옥영경 2011-11-23 1216
4997 2010. 4.12.달날. 흐리더니 밤 빗방울 떨어지다 옥영경 2010-04-18 1216
4996 2007. 6.12.불날. 맑음 옥영경 2007-06-26 1216
4995 2007. 4.27.쇠날. 맑음 옥영경 2007-05-14 121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