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26.쇠날. 맑음

조회 수 1279 추천 수 0 2007.11.06 05:30:00

2007.10.26.쇠날. 맑음


아셔요?
세상의 모든 가을은 대해리 흘목 느티나무에서 시작됩니다.
대해계곡에서 물한계곡 본류 길에 더해지는 곳,
항아리 입구 같은 마을 들머리를 막 빠져나가다 고개 들면
아, 숨을 멎게 하며 나무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이구나...’
어디라고 울긋불긋 하지 않을까만
초록이 어느 곳이라고 지치지 않을까만
그 나무에서 부서지는 햇살은 유다릅니다.
어디서 본 듯한 가을과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가을,
세상 어디나 있는 가을과
유일하게 이곳에만 있을 것 같은 가을이 만나
흘목 느티나무 잎은 꼭대기에서부터 타내리던 붉음은
바닥부분도 마저 채우고 있다지요.


문학소녀이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요.
문학이라는 심연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은 청년기가
누군에겐들 없었을까요.
흔히 글 좀 쓰는 아이가 그렇듯
당연히(?) 가리라던 국문과를 갔으며
시를 썼고 소설을 쓰며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몇 편의 글을 발표했고 서너 권의 책을 내는 사이 서른이 넘었고,
잘 사는 일이 시를 쓰는 만큼 의미로운 줄,
몸을 쓰는 일이 말을 가지고 노는 일보다 귀한 줄을 알아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공선옥의 글에서)으로 글을 읽어보지 않은지 오래,
마흔에 이르렀습니다.
몇 해 한국을 떠나 있으며 한국 문학이 멀었고,
이어 산골에 들어와 바깥 삶을 떠난 지 무려 4년 여,
문학판이 어떠한가 소식 들은 지 오래입니다.
세상으로부터도 머니
현재 문단으로부터도 먼 산골이었지요.
그런데 최근 한국 문단에서 반향이 컸던 단편 하나를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는데,
문장은 짧고 발랄했습니다.
그만큼 잘 읽혔겠지요.
좋게 표현하면 군더더기가 없어 읽는 속도감이 있으니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맞춤하겠습디다.
내용 역시 바래지 않는 주제(젊은이들의 사랑)였지요.
헌데 아쉬웠습니다.
행간이 주는 문학의 묘미는 덜하데요(좀 낡았을지도 모르는).
줄과 줄 사이 호흡이 필요한 고전적 문학의 설레임이 없습디다.
문학의 맛이란 모름지기 행과 행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
말로 다 채워지지 않는 그 질감들을 읽어내는 것 아닐지요.
그래서 고전이 읽히고 또 읽히는 것 아닐는지요.
그 고전의 향기처럼 살게 싶게 하는 이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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