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28.해날. 흐린 오후

조회 수 1469 추천 수 0 2007.11.09 07:09:00

2007.10.28.해날. 흐린 오후


“삼인 가족 한 끼 된장국에 배추 네 다섯 포기...”
배추밭을 나오는
유기농가 아저씨의 푸념입니다.
“세 포기 뽑아다 주면 이것 갖고 뭐 하냐 그래.”
그래서 여섯 포기를 뽑아주면 아내가 그런답니다.
“에걔, 이게 뭐야?”
그러면서 그것만큼 더 뽑아 오란다지요.
그런데 때를 넘겨 배추를 갈지 못한 집은
그것도 부럽습니다요.

발뒤꿈치로 산골 겨울이 옵니다.
곧 양말을 겹으로 신어도 시릴 그곳이겠습니다.
이런 가을 끝물에는 볕 있는 바깥보다
안에서 더 어깨 움츠리지요.
볕바라기라도 하면서 마당에서 옴작거리면 좋을 걸,
흐린 날입니다.
학교도 동네도 조용합니다.
논밭이며 나무 아래며 거두는 손이 바쁘기는 하나
그 움직임은 그림 속에서이기라도 한 양
늦가을 풍광은 소리를 잡아들여
온 산골이 고요합니다.
아이들이 비운 학교 마당도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가마솥방 상 위에는
내다 널던 고추며 호박이며 고춧잎이며가
흐린 하늘로 목을 빼며 너른 바구니에서 자잘거립니다.
세 끼 밥 해 먹으면 후딱 하루해가 저버리는
짧은 산골 낮입니다.

큰 장에 나가 봐야할 일들을 몰아
김천시내 갔다가 고개를 넘어 돌아오는데
저어기 앞에 차 두 대가 느릿느릿 갑니다.
일찍 어두워진 고갯길에 달랑 차 세 대가 전부입니다.
초행인지 앞선 차가 하도 더딘데
다른 날 같으면 질러도 가겠으나
두 차를 쫄랑쫄랑 따라갑니다.
불을 밝힌 그들이 고마웠던 겝니다.
앞서 가주는 게 고마웠던 겝니다.
사는 일이 별 것도 아닌 걸로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됩니다.
며칠을 사람 하나를 보낸다고 마음이 아리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영영 보내는 일이 이리 천근 만근입니다.
나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그를 위해서도
잘 보내는 것도 지혜일 겝니다.
가는 사람은 가고 남는 사람은 남는 게
그래서 나날을 또 암시렁도 않게 살아가는 게
사람 사는 일일 테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94 손가락 풀기를 기다린 까닭 옥영경 2004-07-11 1457
593 2006.2.14.불날 / 2005학년도에 있었던 일련의 갈등에 대해서 옥영경 2006-02-15 1458
592 2007.12. 5.물날. 맑음 옥영경 2007-12-27 1458
591 1월 26일 물날 맑음, 101 계자 셋째 날 옥영경 2005-01-28 1459
590 2006.2.27.달날 / 잡지 '민들레'를 읽고 옥영경 2006-02-28 1459
589 계자 96 세쨋날, 8월 4일 물날 옥영경 2004-08-08 1460
588 116 계자 나흗날, 2007. 1.10.물날. 검은 구름 가끔 지나고 옥영경 2007-01-15 1460
587 11월 26일 쇠날 눈비, 덕유산 향적봉 1614m 옥영경 2004-12-02 1461
586 2007.12. 9.해날. 맑음 옥영경 2007-12-27 1461
585 8월 28-9일, 젊은 할아버지와 류옥하다 옥영경 2004-09-14 1462
584 2006. 9. 7.나무날. 맑음 / 가을학기를 여는 산오름 옥영경 2006-09-18 1462
583 2007.11.23.쇠날. 구름 오가다 옥영경 2007-12-01 1462
582 5월 11일 물날 비갰다 한밤에 다시 쏟아지다 옥영경 2005-05-16 1463
581 2005.12.8.나무날.맑음 / 섣달 잔치에 달뜨다 옥영경 2005-12-09 1463
580 2007. 5.13.해날. 맑음 옥영경 2007-05-31 1463
579 물꼬에서 쓰는 동화 옥영경 2004-05-08 1464
578 7월 13일, 방충망 요새에서 옥영경 2004-07-20 1464
577 2005.11.9.물날.맑음 / 비판과 지지 옥영경 2005-11-10 1464
576 126 계자 닷샛날, 2008. 8. 7.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8-08-24 1464
575 145 계자 닷샛날, 2011. 8. 4. 나무날. 흐린 하늘, 그리고 비 / 우리는 왜 산으로 갔는가 옥영경 2011-08-17 146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