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24-5. 흙-해날. 맑음 / 김장

조회 수 3319 추천 수 0 2007.12.01 22:17:00

2007.11.24-5. 흙-해날. 맑음 / 김장


볕 아래서는 봄날이었습니다.

겨울에 들어서는 입동을 피하여
꼭 전후로 하라는 김장입니다.
겨울이 한없이 혹독하였을 옛적
김장이라면 겨울 먹거리를 갈무리하는
늦가을 최고의 준비였을 것이니
혹여 겨울이 그걸 알고 맵기 더할까 하여
꼭 그 날을 피하여 하란 뜻이었을 테지요.
우리네 삶의 변천사가 흔히 그러하듯
난방시설 좋은 요새야 그게 다 무슨 대술까요.

김장을 했습니다.
김치는 오행의 기운이 고루 담겨 있고
다양한 부재료가 발효를 통해 완벽히 어우러져
김치 한 가지만으로도 영양이 고루 섭취된다 하였습니다.
먹을거리가 아무리 변하였다 하여도
김치는 역시 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지요.
그래서 김장은 여전히 겨울 들머리의 최고의 행사일 테고.

이른 아침엔 닭을 네 마리 잡았지요.
김장철 연례행사입니다.
“한 해 내내 달걀로 우리를 멕이고...”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사람이 무엇이어 우리가 이런 걸 다 누리며 산답니까.
닭죽이 되거나 닭도리탕이 되거나 닭찜이 되겠지요.
“오늘은 닭도리탕 먹어요.”
점심 메뉴가 결정되었네요.

공동체식구들이 다 모였고,
마고농원에서도 식구들이 와 주었습니다.
아예 무채 써는 도구까지 챙겨오셨지요.
“이 사람이 다 할 거야.”
무가 많지도 않았지만
정말 영현샘이 거의 다 하셨습니다.
김장 때마다 당신이 맡은 일이랍니다.
다른 이들은
당파를 다듬고, 갓을 추리고, 마늘을 까고,...
“‘무채를 먼저 조청에 버무려서 할려구요.”
150포기, 여느 해보다 훨 적은 양이니
재료들을 다 다듬어 놓고 버무르자는 저녁답까지는
아주 여유롭습니다.

볕 좋은 마당에 나가 짚을 다루었지요.
무청을 엮는데도 모두 연구자 같습니다.
야무치게 엮인 무청을 바깥 수돗가 천막 안에 매다니
그것도 마음의 풍요를 더하는 풍경이었지요,
겨우 두 줄 밖에 아니 되는 것이었지만.
“하는 김에 김치광 이엉도 갈죠!”
하여 이엉도 엮었지요.
세 사람씩 두 패로 나뉘어 하고
속을 버무리는 일에는 종대샘이 들어와 도왔습니다.
자잘거리는 것은 햇살만이 아니었지요.
사는 게 참 별 게 아니겠다,
이런 잔잔함으로 살 일이다,
딱 그런 느낌들로 모여서들 웃고 떠들며
손들을 놀렸습니다.
“참이요!”
쪽파로 해물전에 곡주를 더해
책방 바깥문 앞 평상에 앉으니
마침 김천 모고교 행정실장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다큐여자> 아니어도 여러 차례 물꼬를 화면에서 만났더랍니다.

네 시,
가마솥방 식탁을 한 켠으로 밀고
비닐을 깔았습니다.
네 사람이 버무르기 시작하고,
한 사람은 차곡 차곡 묻어둔 항아리로 가져가서 쟁이고,
다른 사람은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는 잔심부름을 하고...
온 식구들이 한 방에 다 모여 일하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하던 일을 밀치고
들에서 먹는 밥처럼 둘러앉아 바닥에서 먹는 밥도
참말 훈훈하였지요.
“자정까지 하면 딱 되겠어요.”
시간이 잘도 맞다 싶은데,
아이를 달골에 데려다 놓느라 시간 반을 비웠더니
이런,
남정네들이라 가늠을 잘 못했던가,
양념이 모자란답니다.
"넉넉하다고 많이 넣으라길래..."
“남은 건 백김치를 하던가 할 테니까,
무리하게 멀건 김치 만들지 말고 하던 대로 해요.”
30포기가 남았지요.
문제는 150포기 양념으로 120포기를 했으니
너무 짜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뭐, 무를 성큼성큼 잘라 석박지를 넣으면
어느 정도는 나아질 테지요.

이튿날, 밥알모임이었습니다.
원래는 김장 속을 버무르기로 했으나
엊저녁 1차 김장(뜻하잖게 1, 2부로 나뉜)이 끝나 있었지요.
그것 아니어도 일 많은 이곳이니 일이야 나래비다마다요.
백김치로 할까 하였지만
김장김치로 절여진 것을 그리 쓰기엔 아무래도 꺼려집니다.
백김치는 덜 절이니까요.
맛이 떨어지면 이리 저리 애물단지만 될까 봐.
결국 장을 보아 마저 붉은 김치를 담기로 하였지요.
한 패는 장을 보고,
한 패는 학교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털고,...
오전을 그리 보내고
댓마 창신네 새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습니다.
마을에 몇 안 되는, 50줄에 닿은 ‘젊은이’들이지요.
오래 땅 파먹던 이들이 이제 새집을 얻으니
곁에서도 기쁨이 큽니다.
착한 농부, 누구라고 그들을 그리 부르지 않을까요.
그 사이 마고에서 따님과 사위 후보감이 다녀가기도 하였네요,
예비 장인 장모님이 함께.
새 옷을 별 입어보지 못한 산골소년의 겨울을 위해
두툼한 외투를 사 왔습니다,
아이들 좋아할 생크림케Ÿ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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