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3.물날. 싸락눈

조회 수 1339 추천 수 0 2008.02.20 19:18:00

2008. 1.23.물날. 싸락눈


1.

이제 열한 살이 되는 아이가
먼 나들이를 위해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뭘(종이 한 장)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엄마, 바지는 네 벌이면 되겠지?”
들여다보니 챙겨갈 짐 목록표입니다.
의류, 문구, 기타라고 크게 분류해놓고
의류 아래는 윗옷 바지 내복 팬티 수건이,
문구에는 ...,
기타에는 머리끈 머리빗 들이 적혀있었습니다.
그걸 체크해가며 싸고 있데요.
그렇게 조금씩 혼자 살아갈 준비를 해나가는 게
결국 어른으로 가는 과정 아니겠냐, 새삼스럽습디다.


2.

이메일 혹은 문자메시지가 넘쳐나도
이 산골엔 심심찮게 편지가 닿기도 하지요.
한 계자의 마지막 날, 날밤을 새며 얘기를 나누었던 품앗이일꾼입니다.
내일은 더 괜찮은 자신이 될 거라 믿는,
그리고 제게 거울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그이지요.
그는 상대로 하여금 단식명상을 한 뒤의 기운 같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가 다녀가면 잘 살아야지 마음이 북돋워지지요.

“...
아마 오늘 마지막 계자가 끝나겠네요. 저희 끝난 후로 매일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던데, 얄밉게도 걱정 반 안심 반입니다. 추울 때 비켜 다녀와서 다행이라는 맘이 조금은 생기니 말입니다. 그래도 추운데 감기는 안 걸렸는지, 아이들 밤에 추워하진 않을지, 샘들 아침에 더 일어나기 힘들겠구나 걱정이 더 크답니다.
올 겨울로 제가 물꼬에 간 지도 벌써 네 번째에요. 햇수로 4년! 어제 처음 물꼬를 소개시켜 주었던 후배를 만났어요. 그 후배, 항상 자기 일에 너무 열심인 친구라 가끔 서운할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저 감사한 마음 뿐이에요. 정토회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 그가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와 같이 하지 못함이 너무나 섭섭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내 후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게다가 물꼬와의 연을 만들어 주었으니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저도 물꼬와 항상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감히 “나 물꼬 사람이야!”하고 말하고 싶어요.
물꼬에 다녀오면 참 많이 커서 오는 것 같아요. 어떤 막연함이 풀린다고 할까? 너무나 긴 시간, 옥샘 일정을 생각지 않고 제가 마지막날이라고 붙잡고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 살짝쿵 죄송했어요. 하지만 그 시간으로 머리나 마음이나 많이 정리가 되고 차분해졌답니다.
머리를 채우기 위해 더 배우고 공부해야겠구나, 마음이 나는 일에 주저함을 버려야겠구나,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렇게~
특히 옥샘 이야기 들으면서 옥샘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어요. 사실 그저 푸근할 것 같다는 대안학교 샘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옥샘, 강하시고 어른에게(아이들에게와 달리) 굉장히 냉정하셔서 조금 당황했거든요. 이번 일정 동안에도 그렇다 여겼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솔직하게) 굉장히 여리시고 순수하시다 느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구나, 그래서 보통 어른과 다르구나, 제가 이번에 느낀 옥샘입니다.
주제 넘는 일일일지 모르지만 옥샘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 좀 더 온전해졌어요. 쉽게, 간단히는 한 번 더 계자를 하고 나면~
...
1년에 한 번 손 보태고 가져가는 건 너무 많아서 항상 죄송해요.
물꼬가 항상 그 자리에서, 항상 그 마음으로 있기에 다녀가는 이들이 돌아보고 나아갈 수 있다 생각됩니다... 제가 다 얻어갈 때까지는 꼭 계셔주세요. 저 정말 끝없이 부족한 거 아시죠? 언젠가 다녀간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모습을 상상해보며 미소 짓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평화로우시길 마음모아 바랍니다.
...”

마음 방에 불땀 좋은 질화로 놓이데요.
함께 밤을 지샌 시간으로
머리나 마음이나 많이 정리가 되고 차분해졌답니다.
염화미소인 모양입니다.
찾아오는 이네들의 변함없는 나눔과 섬김으로
물꼬야말로 돌아보고 또 나아가고 있는 줄
그대들도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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