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9.흙날. 맑은 속에 눈발

조회 수 1063 추천 수 0 2008.03.05 10:41:00

2008. 2. 9.흙날. 맑은 속에 눈발


무주에서 밤길을 달려오고 있었는데,
계속 전화가 울립니다.
차를 길가에 세웠지요.
한 고아원의 원장님이십니다.
교사들의 내부 갈등으로 한동안 시름에 겹던 공간이지요.
그런데 또 뭔가 급박한 문제가 일어난 겝니다.
수년 동안 재정을 맡았던 이의 공금횡령죄가 드러났는데
그 개인의 일로가 아니라 그 단체의 비리인 양 기사가 작성되면서
또 한 번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합니다.
기자가 ‘사정은 알겠는데 이미 기사를 중앙에 송고했다’하니,
다른 길이 없겠는데 물어온 것입니다.
저라고 별 수가 있을라구요.
다만 이 땅에서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매체에
절친한 선배가 있다는 건데,
그게 정말 힘이 될 수는 있으려나 모를 일이지요.
어찌되었든 그 지점으로부터 한 시간 이내에
파문이 멈추기는 했습니다.
기자가 원고를 내렸지요.
그런데 어떤 문제가 얽히기 시작할 때의 우리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이번 일과 관계가 있다기보다
그 공간의 지난 한 해의 갈등의 줄기를 보아오면서 한 생각이지요.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실 넘들은 몰라요, 알 수도 없구요.
그리고 별 관심도 없지요.
그냥 ‘시끄럽구나’, ‘싫네’, 그러는 거죠,
가까운 사람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거고.
그런데 당사자는,
사실(이것 말고 다른 낱말이 없네요) 사람이 다 고만고만한데,
나는 다르다 안간힘을 쓴단 말입니다.
남의 일이 아니지요.
저 역시 두어 해 전 전혀 다르지 않은 문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게 가장 어려웠던 건
꼭 같은 방식(상대의 폭력)으로 상대를 대응하려는
자신의 내적폭력과 다투는 일이었지요.
“아, 네, 그렇습니까!”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구요.
어쨌든 시간이 흘렀고,
시간은 힘이 세지요.
그이에게 시간이 흐르기를 다만 바랍니다.

기락샘과는 늘 얘기의 주제가 다양합니다.
말이 되는 생의 도반이 남편인 것은 참 고마운 일이지요.
가끔 거기 열한 살 아이도 감초가 됩니다.
오늘은 ‘민주주의’였네요.
이 땅이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미 획득했을지는 몰라도
(그래서 더 이상 민주화는 학내에서도 담론이 아니지요)
실질적 민주주의는 아직 멀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기층의 의견을 대표한다거나
책임을 가지고 자율로 일을 해 나가는 것들 역시
민주주의에서 대표자가 해야할 일이라고 할 때
사실 태안 사태를 한 번 보자...”
“국난이 일어나면 웃대가리들은 다 도망가고...
늘 민초들이 일어나 싸우지.”
“병자호란에서부터 역사가 그랬고...”
그럼, 근대는 달랐는지요?
“IMF를 봐라. 금 모으기 하고...”
“온정주의라고 해야 하나 뭐라 해야 하나...”
그것만은 또 대단하지요.
“태안기름유출사건만 해도
관련 정부부처에서도, 문제의 기업에서도,
어디 누가 책임지고 나섰냐?”
그런데 역시나 봉사자들이 태안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고...
참으로 독특한 이 나라입니다.
그러나 어찌 합니까.
너희들이 했으니 너들이 책임져,
그러기 전에 당장 아픈 사람이 움직일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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