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12.흙날. 오후 흐림

조회 수 1396 추천 수 0 2008.04.20 08:44:00

2008. 4.12.흙날. 오후 흐림


셈놀이를 한 뒤 소리북을 들고 앉습니다.
오늘부터 한동안 판소리를 합니다.
학기 중에 내내 하는 건 아니고
학기 초 잔치 앞두고, 그리고 계자에서 하지요.
오늘은 아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채민이요.
지난 해 판소리를 배울 수 없겠느냐는 문의가 있었고,
지난 겨울 계자에도 다녀갔지요.
영동에 판소리를 전수하는 이가 없어
김천으로 넘어가 민요샘한테 두어 차례 찾아간 적도 있다 했습니다.
“말도 너무 어렵고... 아이가 좀 더 크면 가르치라 그러더라구요.”
따로 가르칠 수는 없고 마침 우리 아이들 하는 시간이 있으니
같이 하면 어떻겠냐 연락을 드렸더랍니다.
서송원이래야 차로 20여분이면 오거든요.
동생 하연이도 다율이도 같이 왔지요.
학교 마당을 다 채우며 놀다들 갔답니다.

피아노를 친 뒤 텃밭에 나갔습니다.
청상추 적상추 시금치 아욱 쑥갓 열무 백옥무 토마토가
어찌나 부지런히 오르고 있던지요.
밭을 맵니다.
아이들은 세 해째 먹고 있는 부추밭을 차지하고 매고 있었지요.
지나던 인술이아저씨가 들여다봅니다.
“아이구, 잘 컸네.”
“다른 식구들이 해왔지, 제 손으로는 올해 처음 뿌려봤는데...”
“그런데, 날 좋을 때 매야지....”
흐린 하늘 한 번 올려다보시며 지나듯 말씀을 떨어뜨리셨지요.
볕이 강하지 않으니 밭에 있기 좋다 싶은데 말입니다.
“볕 좋을 때 해야 풀이 말라죽지, 금방 또 살아나거든.”
인술이 아저씨의 말을 늘 참 부드럽습니다.
야단치듯 핀잔주듯 하시는 다른 어른들과 달리
당신은 주장이 배지 않은 듯 슬쩍 의견을 내놓으시지요.
그런데도 들은 이가 다시 잘 새겨보게 합니다.
큰 목소리가 꼭 귀에 잘 닿는 게 아니지요.

간장집 뒤란 가장 습한 곳에 토란을 심기도 합니다.
두둑이 낮으면 지가 커나가기도 어렵고
거둘 때 땅을 파는 것도 힘이 든데(지금 감자밭이 그러합니다),
두둑을 두툼하게 세우지요.
기락샘이 와서 도와주기도 했네요.
토란을 넣습니다.
채식운동가 손석구님이 지난 겨울 들머리에 나눠주신 종자입니다.
“어느 게 위고 어느 게 아래예요?”
위가 아래 같고 아래가 위 같다고 아이들이 재밌어 했지요.
작두콩모종도 옮겼습니다.쌍둥이네할머니가 준 아욱도 한 곁에 뿌렸지요.
들어오는 길에 밭가에 있던 돌나물을 캐와 무치고,
무순을 솎아 샐러드로 저녁 밥상에 내놓았답니다.

물꼬의 봄은 빨아 넌 이불로 온다?
맞아요, 오고가는 이가 많은 이곳입니다.
잔치를 앞두고,
그것 아니어도 봄이니까요,
곶감집이며 숨꼬방이며 달골 햇발동이며 창고동,
여기저기 널려있던 이불을
기락샘이 죄 모아다 쌓았습니다.
보름을 내내 할 빨래짐이지요.
다른 건 몰라도 묵어가는 이들 이불만큼은 보송하게 해야지 합니다.
종대샘은 틈틈이 깨오던 바깥수돗가 콘크리트를
오늘 마저 다 깬다 했고,
젊은할아버지는 학교 길 아래 밭가 물길을 파고 계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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