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27.해날. 맑음

조회 수 1260 추천 수 0 2008.05.15 07:39:00

2008. 4.27.해날. 맑음


잔치가 끝나고,
더러 손에 떡을 들고
혹은 남새밭에서 갓 뽑은 순을 들고
아니면 효소나 주방세제를 들고 사람들이 빠져 나갔습니다,
아쉬움으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그리고 어제 잔치를 담은 것에 이어 sbs 촬영이 이어졌습니다.
가야와 진석이, 류옥하다가 그림자인형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고,
텃밭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담기고, 은사님 두 분이 담깁니다.
교육현장에 있는 세 세대 이야기가 되는 거지요.

거제도로 옮아갔습니다.
마침 두 분이 거기 다 사십니다.
"내가 늘 좀 못 도와줘서..."
통화할 때마다 샘들이 늘 안타까워하시지요,
이래저래 언제나 보태주고 힘이 되어주시는 당신들이시거늘.
교장직을 끝으로 재작년에 은퇴하신 성옥주샘,
그리고 아직 고교에 계신 김향련샘.
“니도 니 같은 제자가 있으면 안다.
기억해주는 게 고마운 거지. ”
“그러면 제가 잘난 거구나!”
이제 그런 농담도 하는 아줌마가 되어 샘들을 뵙습니다.
어렵고 어두웠던 날들에 곁에 계셨던 당신들이시지요.
세상 사람이 다 손가락질을 하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네 편이야,
아이들에게 그리 말해왔던 것도
어쩜 당신들이 제게 해주셨던 그대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새벽 1시에야 돌아왔지요.
산골의 밤 고요가 맞았습니다.

94년 여름 설악산으로 첫 계절학교를 떠났고,
그 해 시집 한 권으로 문학판이 아니어도 떠들썩했는데,
더러는 불편해했고 더러는 통쾌해도 했으며
한편 운동판을 싸잡아 팔렸다고 분노하기도 했더랍니다.
어쨌든, 어떤 식으로든, 80년대를 살아냈던 이들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새삼 그 표제시가 떠올랐네요.
순전히 잔치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제법 아득하기까지 한
고교시절의 한 때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어서도 그랬겠는데
문득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는 제 습관 같은 말투가
이 시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소스라치게 들었네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는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영미의 ‘서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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