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12.나무날. 맑음

조회 수 1313 추천 수 0 2008.07.02 23:56:00

2008. 6.12.나무날. 맑음


기차도 전기도 없었다,
그렇게 시작하는 오영수의 <요람기>에서
봄으로부터 여름으로 넘어가는 무렵은 이렇게 쓰고 있었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지고 밤꽃이 피면, 보리가 누렇게 익고, 무논에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그 밤꽃 만개하여 향기 천지입니다.
“참 얄궂지...”
울어머니는 밤꽃내를 그리 묘사하셨더랬습니다.
누구의 글이었을까요, 아님 전형화된 이 맘 때의 풍경일까요,
늙은 시애비는 굽은 등으로 못줄을 잡고
혼자된 며늘애는 밤꽃향에 뒤숭숭해진 마음에
괜스레 심통이라도 났는지 손바닥이나 닥닥 긁어대고
시애비, 며늘애 욕은 못허고 애궂은 못줄 지팡이만 탕탕 두드리며
저놈의 밤꽃내가 집안 말아 먹겄다고
험험 헛기침만 한다던가요.
학교 뒤란 밤나무들에서
마당으로 넘어오는 꽃내 한창입니다.

술잔처럼 오목하거나
접시처럼 동그랗지 않고
양물처럼 길쭉한 꼴로
밤낮없이 허옇게 뿜어내는
밤꽃향기
쓰러진 초가집 감돌면서
떠난 이들의 그리움 풍겨줍니다.

; 김광규의 ‘밤꽃향기’ 가운데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는 법이지요.
오늘은 한 대학의 휴지통을 뒤적거리고 다녔습니다.
아이들 수업에서 쓸 교구를 만들 일이 생겼지요.
마침 얼마 전 물꼬는
쓰레기분리수거를 하며 그 많던 페트병 다 내었더랬는데,
하필 그게 필요했지 뭡니까요.
그런데 학교 청소부아저씨가 도와주셨습니다.
아줌마가 혼자 뒤적거리고 다니면 보기도 그렇고 쉽지도 않다시며
일일이 휴지통을 휘저으며 찾아주셨지요.
따지도 않은 캔을 발견하기도 하고
겨우 몇 모금만 빠진 커다란 음료수도 나왔습니다.
아주 자주 있는 일이라 합니다.
단지 이 장면으로 풍요의 시대가 어쩌구 할 건 아니겠지만
분명 물질이 넘치는 시대가 맞긴 하지요.
이런 시대에 한켠에서 사람이 굶어죽고 있다니
이눔의 세상 참...
또, 생산력이 엄청나게 발달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먹고 살기 위해서 목구멍이 포도청인 삶이라니...

사람이 사는데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음을
날마다 깨닫는 이곳이랍니다.
고마울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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