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20.쇠날. 비

조회 수 1223 추천 수 0 2008.07.06 17:13:00

2008. 6.20.쇠날. 비


아,...
박꽃 피었습니다.
며칠 무심히 지나가던 간장집 앞마당 기둥 곁,
하얗게 눈부시게 피었습니다.
여름 해가 너무 길어 저녁밥 때가 가늠키 어려울 때
참 신기하게도 박꽃이 대여섯 시경 핍니다.
시계가 없던 시절 그렇게 저녁쌀을 앉혔다지요.
“박꽃은 왜 밤에만 펴요?”
아이가 꽃을 가만가만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다른 꽃들이 벌과 나비로 하여 수분을 시키듯이
박꽃은 박각시나방으로 수분을 시킵니다.
박을 찾아온 각시인 게지요.
저마다 다 살 길을 찾는 자연입니다.

둘러보니 토마토도 몇 알 달리고
노란 꽃을 단 채 오이가 애기새끼손가락만치 자라 있습니다.
누군가 보든 보지 않든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날이 가고 존재들이 자랍니다.
아이들 또한 그렇게 자라고 배워가지요.

장마긴 장마인개 빕니다.
비가 기네요.
비가 많으니 가마솥방에서 식구들 얼굴 보는 일도 잦습니다.
소설가 이외수선생 얘기가 나왔네요.
처음 <꿈꾸는 식물>을 들고 나와 우리를 흔들어주던,
아마도 조세희선생의 <난쏘공>만큼이나 강렬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의 <들개>처럼 그렇게 지내본 적도 있었지요.
5년 동안 비어있던 대해리의 이 학교에 처음 왔던 1996년 그 가을에도
바로 그 작품을 생각했더랬습니다.
마침 그에 관한 기사가 있어 큰 소리로 읽습니다.
“그는 사회의 진보를 믿지 않는다. 소수의 바람과 상관없이 다수는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애쓸 뿐이다. 속계에 남아있는 자들은 세상의 야만을 인내해야 한다.”
그러게요, 속계에 남아있다면 야만을 견디어야 할 밖에요.
신작의 한 구절도 옮기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일에 평생을 건 사람에게는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격언이 무의미하다
그에게는 오늘이나 내일이 따로 없고
다만 ‘언제나’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 <하악하악>에서

황토샘과 종대샘은 뒤란 천막 안에서 설비작업이 한창이고
젊은 할아버지는 밭들을 돌아보고 있으며
저랑 아이는 상촌에 나가 설장구도 한 판 치고 온 오후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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