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1.불날. 흐림

조회 수 1086 추천 수 0 2008.07.21 18:11:00

2008. 7. 1.불날. 흐림


아, 7월입니다.
날이 잘도 갑니다.
잎새들이 넓게 퍼져
그들끼리 겹겹을 이루며 그늘이 짙어가는 한여름입니다.
녹음이 지치고 또 지치다
이제 더위 한물갔네 하며 돌아보면
초록 지쳐 단풍들 이곳입니다.
밥을 해서 나누는 일이 즐겁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식구들을 위해
노래 흥얼거리며 밥상을 차립니다.

아이들이 국선도를 하는 오전에
희중샘은 뒤란에서 흙작업을 도왔습니다.
‘무시멘트’의 깃발 아래
목수샘과 황토샘 옷이 흠뻑 젖고 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받쳐주네요.
물놀이땐 쨍쨍하더니
밭에 들었을 땐 수그러들었습니다.
밭매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하루 해봤다고 손이 익어진 덕도 있을 테지요.

누군가 나비를 보고 소리를 쳤습니다.
반가움의 외침이 아니라 끔찍한 걸 만났다는 소란입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것이 전염됩니다.
이곳에 사는 아이는 그게 또 마뜩찮습니다.
문화적 차이가 드러나는 한 예가 되지요.
이해가 안 된다 합니다.
이해란 게 뭘까요, 그냥 그렇구나 하는 것 아니겠는지요,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이겠습니다, 그렇구나 하는.
그거야 무에 어려울까요.
우리 서로 바로 그거 해보려 합니다.

한데모임에서 경이가 그랬습니다.
“달골로 가면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꼭 도둑이 들었을 것 같고
창문이 깨져있을 것 같고...”
언제부터 그렇냐 물으니
하다가 다친 뒤부터 그런 듯하답니다.
가만히 안아줍니다.
그때도 혹여 같은 시간대에 있었던 아이들에게
스스로에게 가해자로서의 가책 같은 게 남기라도 할까,
그래서 아이들을 바로 보낼 수가 없었지요.
“사람 사는데 별일이 다 일어난다.
이미 일어난 일이다.
문제는 어떻게 수습하느냐지.”
아이들 모아놓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며
병원으로 달려갔더랬지요.
다행히도 마음들이 가벼워져 갔습니다.
하지만 다친 하다에게만이 아니라 그 상황에 같이 있었던 아이들에게
지난 ‘대해리 봄날’의 사고가 어떤 식으로든 남은 게 있지 싶더니,
오길 잘했습니다.
이번 걸음에 그런 것들을 잘 털고 갈 수 있을 겝니다.

면소재지에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으레 그런 것인가 싶었고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
나만 불편해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닌가 돌아보다가
점심 밥상을 위해 우선 급히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야만적인 일이어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합니다.
그러니까...
방사선사가 종이컵에 든 약물을 주며 반을 마시라 했지요.
무어냐 하니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일단 반을 마셨습니다.
다음은 그가 제 목을 치켜들더니 어떤 가루약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고
다시 남은 약물을 마저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어떤 기계 벽 앞에 서라 했고
역시 어떤 설명도 없이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몸이 뉘어지데요.
더럭 겁이 날 밖에요.
어찌 어찌 마치고 돌아는 왔습니다만,
한 존재가 이렇게 야만적으로 대해지기도 합디다.
식구들과 얘기를 나누었더니
모두가 역시 분노할 일이라 동의합니다.
아무래도 건강관리공단에 항의하여
다른 이들에게 이런 피해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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