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계자 사흗날, 2008. 7.29.불날. 맑음

조회 수 1395 추천 수 0 2008.08.04 19:30:00

125 계자 사흗날, 2008. 7.29.불날. 맑음


< 그가 있어 즐거운 일도 많잖아 >


샘들이 먼저 일어나 고래방에서 수련을 합니다.
그렇게 다진 기운 위에 아이들이 들어서지요.
‘해건지기’입니다.
좀 지겨워해도 하면 좋다고들 합니다.
그럴 밖에요.
이 좋은 곳에서 몸을 깨우고 푸는 아침이 얼마나 신선하겠는지요.
‘해건지기 시간 참 좋습니다.’
은영샘도 하루평가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답니다.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우리들의 아침밥 이름입니다.
가끔 시를 읽어주기도 하고
재주 있는 이들이 음악공연도 하고
좋은 곡을 가려 들려주기도 합니다.

밥은 먹은 뒤의 잠시의 짬도
아이들은 뭔가를 하지요.
“얘가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는데, 마감됐는데...”
푸하하, 자기들 놀이에도 열린교실처럼 정원이 있고
마감이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어떤 문화에 금새 녹아들고 금방 다 익숙해지는 아이들이지요.
복도에서 승완이는 오르간을 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아침이네요.

‘손풀기’를 끝내고 ‘한껏맘껏’이 이어집니다.
말 그대로 한껏, 맘껏 누리는 자유의 시간들입니다.
그거 아니어도 자유로우나
대놓고 자기 맘대로 시간을 쓴다는 건
또 다른 색깔의 자유, 헐렁함을 주지요.
아이들은 우르르 ‘태평양’(아래 계곡쪽)으로 갔다가
다시 몰려서 달골수영장(위 계곡)으로 달려갑니다.
더운 날이라고 다 물이 반가운 건 아니지요.
꼭 책방이나 모둠방, 혹은 쉬는 방인 ‘숨꼬방’에 든 아이들도 있습니다.
윤주와 동준이 민규 성래는
‘모두가 함께 좋아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소희샘이랑.
애들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어른은 싫어하는 것만 하고 살아란다던 어느 부모님의 말씀이
기초재료가 되었더랍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자기 행동은
정당하고 옳고 당연하다는 한 아이의 지론이 이어졌던 거지요.
말하고 듣는 문화가 없는 사회에서
이곳의 토론들은 좋은 학습의 자리가 됩니다.

점심에 영준샘이 똥통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쓰는 ‘작은해우소’를 실험해보고 있는 시점이지요.
전체를 마감하기 전 계자에서 써보고
고칠 것 고치고 바꿀 것 바꾸어 완성을 하려 합니다.
지금은 똥통을 끌어내 비우는 방식이지요.
영준샘은 수시로 의료상담도 한다나요.
당장 약에 의존하기보다 자연치유력, 몸의 자정력에 먼저 의지하는
물꼬의 방식을 잘 설명해주고 있답니다.
동준 민규 윤주 지성 4인방은
저들끼리 몰려 감정을 극대화시키고 있는데,
엄마 보고 싶어요 하며,
교무실을 스무 댓 번은 드나들고
샘들마다 붙들고 하소연을 합니다.
아, 저것도 저것들이 푸는 방식이겠구나,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는 유쾌하게 웃어주기까지 합니다.
영준샘이 4인방과 더 이상 부모님 얘기에 매이지 않고
잘 지내자는 약속을 받았다는데 글쎄...
그냥 그게 그들이 나름 잘 지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들데요.
내일은 또 어떨까요?

점심 먹고 다시 물에 갑니다.
오전의 열린교실과 오후의 한껏맘껏이 바뀐 데다
열린교실 시간을 뒤로 주욱 밀어놓으면서
아주 길어진 한껏맘껏이지요.
아이들은 저녁답에도 또 달골 갔습니다.
대동놀이를 달래할 것도 없었지요.
다 다 대동놀이인 걸요.
한편 아이들은 다슬기를 잡느라 허리를 펼 줄 몰랐습니다.
올갱이국밥도 어느날 나오겠습디다.
그리고, 빨래, 으악!
젊은할아버지, 어마어마한 빨래를 종일 빨아
빨래방으로 실어 나르고 널고 걷고 계십니다.
‘유난히 햇살 뜨거워 다들 탔다. 22년만에 처음으로 살을 태워봤다.’
(희중샘의 하루평가글에서)

아이들이 고래방에 모였습니다.
양초만들기를 진행할 김민순샘을 기다리지요.
약속한 시간이 조금 지납니다.
오후의 고래방은 덥기 더하지요,
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 즈음은 부엌과 큰 해우소 사이의 공간이
그늘이 좋지요.
마침 바람까지 닿습니다.
“우리 나가자.”
영준샘이 아이들 몇과 얘기 나누고 있는 걸 보았던 참이라
우리 모두 나가서 샘 얘기를 듣자 하였습니다.
샘들이 이야기 이어달리기를 해도 재밌는 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요.
산에 갈 때 먹을 사탕도 미리 한 알씩 꺼내 물었습니다.
이런 작은 틈을 사랑합니다.
바람이 그리 달다니,
그늘이 그리 귀하다니...

막 옛 얘기 시작하려는데
김민순샘이 닿았습니다.
오늘 열린교실은 모두 한 덩어리로 하는 젤리초만들기입니다.
“다른 교실이 열렸어도 모두 이거 했을 걸요.”
그러게요.
“그러면 오늘 교실을 백 개 열은 걸로 하자,
그런데 다 폐강이 된 거지, 양초 인기 땜에.”
색깔모래를 담고 색깔자갈을 넣고 불가사리도 꽂고...
‘태안바다를 담아가세요’라는 제목으로 했던 초만들기 재료들이랍니다.
그런데 정작 초를 만드는 것이 이 시간의 중심이 아닙니다.
바로 벌을 치는 아줌마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재미나고, 그리고 귀합니다.
벌을 치면서 나온 밀랍으로 초를 만들고
그러다 다른 초 만들기를 배우시고...
오늘도 고추장만들기 체험을 진행하다 달려오신 길이었지요.
벌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지는데
어떤 질문에 대해서건 척척척이십니다.
당신 삶에서 나온 얘기, 그 살아있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지요.
‘특히 양봉하시고 그 연장에서 초 만들기를 하는 자기 삶을 이야기 하시는 게 재미있었음(자연스럽고, 이야기도 잘 풀어서 말씀해 주셔서)’(은영샘의 하루평가글에서)
“이 걸로 돈도 벌어요?”
경이가 이런 질문도 던졌습니다.
“이거 하나당 오천원이다.”
그러자 더 귀한 초가 되어 버려
초를 모아 불을 붙이자던 아이들이
태우기 아깝다며 꽁꽁 여몄더랬답니다.
잘 가져갈수 있도록 선물용비닐까지 챙겨오신 샘이셨지요.
가끔 이렇게 바깥 샘들이 와서 교실을 열어주는 것도 좋겠다고들
샘들이 입을 모았네요.

‘한데모임’.
어제 나온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해지는 저녁 마당에 모였더랬지요.
‘한데모임 때 밖에서 했는데 마치 한 편의 그림 같아서 너무 좋았습니다.’(소희샘의 하루평가글에서)
생각을 충분히 나열하게 하며
이 시대 우리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여다봅니다.
여전히 강경하게 보글보글에 참가하지 않은 그에게
먹을 걸 나누어줄 수 없다는 아이들이 대세입니다.
더구나 뻔히 무언가 도움이 필요한 아이인데도
아이들은 그를 외면합니다.
누굴 비난할 수 있겠는지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솔직함을 비난할 건 아니지요.
돈으로 모든 것을 환산하고,
돈을 지불했으면 내 맘껏 함부로 써도 된다는,
그리고 조금의 불편함도, 손해도 견딜 수 없어하는
이 시대의 문화가 그러한 걸요.
또한 아이들이란 존재가 그렇지요,
당장 내 것이 눈에 더 많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요.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에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라는 게 있지 않을지요.
‘한데모임에 참여, 민주적 소통 좋습니다’(영준샘의 하루평가글에서)
‘한데모임시간에 **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이들이 보글보글방에 참여하지 않은 **에게 왜 음식을 나눠줘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뒤에서 아이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한마디는 많은 경우 부정적인 의견이었고 때로는 무섭도록 슬픈 의견도 있었다. 그 때 윤찬이가 던진 한 마디,
“**가 있어서 즐거운 일도 많잖아.”
참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나의 인간관계 혹은 사람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 그 사람이 있어 내가 즐겁다면, 행복하다면, 무언가를 주고 받는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없지 않을까. ** 또한 그런 관계 속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무열샘의 하루평가글에서)
도대체 우리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이 지구 위에서 우리 도대체 뭐 하는가,
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칫 좌절이 스미는 듯도 하였으나
또 그게 다여서는 아니 되겠지요.
강요나 당위가 아니라
‘문화’로 ‘감수성’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눔과 너그러움과 관용들 말입니다.
마당엔 어느새 어둠 밀려들었지요.

대동놀이.
고래방이 아주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음악이 있는 물꼬축구'였지요.
작전회의를 통해 아주 작은 아이들도 역할을 잘 맡았음 좋았을 걸,
좀 아쉬웠습니다.
'물꼬축구는 다 좋은데 쫌 거칠어서(...) 오히려 더 필요할 지도...'
새끼일꾼 다옴이가 하루평가글에서 그리 썼데요.
온 몸으로, 하나로 뒹구는 놀이는
참말 재미가 있습니다.
사라진 '놀이'들이 여기서 되살아나고 있지요.

잠자리 머리맡에서 동화를 들려주며 아이들을 재우고
샘들이 모였습니다.
날마다 하는 ‘샘들 하루재기’.
한 모둠은 모둠 하루재기에서 착한 일을 주제로 놓고 있다지요.
오늘은 안했다는 아이들이
내일 두 배로 하겠다고들 결심하더라나요.
처음 온 은영샘의 얘기가 이어졌지요.
“저도 새벽에 수련하지만 밤에는 일하다 쓰러지다시피 자고...
(여기서는) 같이 일어나고 수련하고 아이들 하루 갈무리 하고,
하루흐름이 참 좋은 것 같애요, 건강하고.
그리고, 가장 일상적인 것, 밥 먹는 것 중요하잖아요...”
그런 게 여기서는 제대로 가치를 발현하는 것 같다는 말이었지요.
자누는 물꼬만 오면 배고프다 합니다.
“도시 살면 배고픔이 없잖아요, 여기선 밥 잘 먹고...”
찬영이는 아침에 배가 고파
옆에 있는 풀이라도 뜯어먹고 싶댔지요.
한영이는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오후,
저녁 언제 먹냐 물었더랍니다.
예, 식(食), 얼마나 중요한 것이더이까.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배움의 자리이지만
샘들도 스스로, 혹은 서로 좋은 연이 되어 서로를 키우는
훌륭한 배움터입니다.
열심히 동화책도 읽어주며 자신의 새로운 소질을 계발(?)했다는 영준샘은
새끼일꾼 다옴이랑 소연이랑들에게 진로상담도 해주고 있었지요.
예, 샘들을 통한 배움도 큽니다.
사람을 정성껏 대하는 영준샘,
순하고 선하게, 애써서 아이들을 대하는 은영샘,
그의 움직임이 놀랍도록 나날이 변화하는 희중샘,
그리고 새끼일꾼들의 헌신은 늘 경이입니다
(씻는 곳이 좀 편해지면서
오늘 자주 머리 수건 두르고 다닌 새끼일꾼들, 한 소리 좀 들었지요.
차라리 땀내가 아름답다는 종대샘의 일침이 있었더랍니다.
하지만 그들이 해내는 일들에 견주면 아주 아주 사소한 문제였을 뿐이지요).
함께 하는 이들에게 존경이 우러나는 시간들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 125 계자 사흗날, 2008. 7.29.불날. 맑음 옥영경 2008-08-04 1395
4995 125 계자 나흗날, 2008. 7.30.물날. 맑음 옥영경 2008-08-06 1523
4994 125 계자 닷샛날, 2008. 7.31.나무날. 비 온 뒤 옥영경 2008-08-09 1315
4993 125 계자 닫는 날, 2008. 8. 1.쇠날. 맑음 옥영경 2008-08-10 2004
4992 2008. 8. 2.흙날. 맑음 / 126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8-08-22 1285
4991 126 계자 여는 날, 2008. 8. 3. 해날. 맑음 옥영경 2008-08-22 1327
4990 126 계자 이튿날, 2008. 8. 4.달날. 맑음 옥영경 2008-08-23 1273
4989 126 계자 사흗날, 2006. 8. 5.불날. 맑음 옥영경 2008-08-23 1600
4988 126 계자 나흗날, 2008. 8. 6.물날. 맑음 옥영경 2008-08-24 2002
4987 126 계자 닷샛날, 2008. 8. 7.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8-08-24 1413
4986 126 계자 닫는 날, 2008. 8. 8.쇠날. 맑음 옥영경 2008-08-24 1236
4985 126 계자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8-24 2710
4984 2008. 8. 9. 흙날. 맑음 / 127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8-09-07 1299
4983 127 계자 여는 날, 2008. 8.10.해날. 맑음 옥영경 2008-09-07 1265
4982 127 계자 이튿날, 2008. 8.11.달날. 소나기 옥영경 2008-09-07 1422
4981 127 계자 사흗날, 2008. 8.12.불날. 소나기 지나고 옥영경 2008-09-07 1475
4980 127 계자 나흗날, 2008. 8.13.물날. 비 오락가락 옥영경 2008-09-07 1428
4979 127 계자 닷샛날, 2008. 8.14.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8-09-07 1486
4978 127 계자 닫는 날, 2008. 8.15. 쇠날. 쨍쨍하다 소나기 옥영경 2008-09-07 1443
4977 127 계자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9-07 184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