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계자 여는 날, 2008. 8. 3. 해날. 맑음

조회 수 1371 추천 수 0 2008.08.22 22:00:00

126 계자 여는 날, 2008. 8. 3. 해날. 맑음


궂은일을 내가 먼저,
이 공간을 먼저 알았던 이가 마음을 내서 하자,
그렇게 아침명상을 시작하며 샘들이 하루를 엽니다.
남은 이들이 아이들 맞이 청소를 하고
영동역으로 남자샘 셋만 나갔지요.
기표샘 무열샘 희중샘.
‘내가 기억 못하는 아이들이 나를 기억해줘서 기뻤다.’
계자를 거치고 긴 새끼일꾼의 날들을 거쳐
이제 품앗이일꾼이 된 기표샘입니다.
무열샘이 앞에서 아이들을 모으고 부모님들께 인사를 하는데,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동년배 기표샘이 역을 다녀와서 그러데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앴어요.”
이제는 자기(세대)들이 물꼬를 인계인수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합니다.
그러게요, 올 여름이 정말 그 세대전환의 한 순간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 맞이 처음(일을 맡아서 주축으로)이었는데,
아는 아이들은 누가 올까 둘러보며 어렸을 때 기억이 났어요,
또래 아이들 누가 오나, 샘들은 누가 오나 궁금해 하던.
그때 봤던 샘들도 생각나고,
저 아이들도 나한테 그런 이미지 갖고 있겠구나,
이번에 새로 온 애들도 그런 걸 가지겠구나...”
그렇겠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선 어른은 다 교사일 수밖에 없지요.
그들이 보고 배우고 따라하지요.

마흔 다섯의 아이에
가방 싸들고 와버린 아이 하나를 더해 마흔 여섯의 아이,
그리고 여기 살고 있는 아이 하나를 더해
복닥이기 시작합니다.
약을 챙겨온 아이들이 많네요.
환규와 창현이의 아토피, 환일이의 비염,
지운이의 성장호르몬주사, 영창의 갑상선항진증,
윤정의 사마귀, 영범이의 상처밴드,
단아의 안약, 석주의 상처 바르는 약, ...
알아서 할 수 있는 아이들은 알아서 챙길 수 있도록
아침 저녁 일러주기로 하고
조금 걱정스러운 아이들은 샘들에게 약을 맡겼지요.
이번 아이들은 재밌습니다,
하기야 어느 때고 아니 그럴까만.
뭐만 하면 줄을 섭니다, 그것도 한 줄로 좌악.

당장 파리와 모기와 벌레들이 또 문제가 됩니다.
늘 그러하듯 우리들의 관념은 깊지요,
벌레에 대해서도, 더럽다는 것에 대해서도, 똥에 대해서도.
이 우주에 우리가 아는 진실이란 게 도대체 얼마나 되려나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다른 존재에 대해
과학자가 알아냈다는 것들이 도대체 몇 퍼센트나 진실에 근접하는 걸까요.
다른 존재에 대한 얼토당토 않는 근거를 토대로 한 무시,
혹은 약한 자에 대한 우월,
이런 것이야말로 썩은 내나는 더러움이 아닐는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관념들을 잠시 나마 깨보기,
우리 어른들도 아이들과 같이 그리 보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점심 먹고 축구 한판,
이어 달골수영장으로 갑니다.
자기 글집도 만들고, 서로 인사도 끝낸 뒤이지요.
역시 물놀이는 재밌습니다.
애들도 샘들도 즐겁습니다.
새끼일꾼 정훈형님은 이 시간을 이리 기록하고 있었지요.
“애들이 이뻐서 좋구나.
근데 장난이 너무 심해서 힘들어 죽겠다.
물놀이 하다 애들이 밀어서 발에 좀 크게 멍들었다.
이놈에 시끼들 화낼 수도 없고, 답답하다.”
그런데 그런 왁자함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오며 가며 조근조근 얘기들을 나누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지요.
부선이랑 무열샘이 저만치 걸어가고 있습니다.
‘공간도 중요하다, 자연 안에서 고요한 분위기...’
맞아요, 이런 자연 안으로 그 조용한 목소리들이
울림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새끼일꾼 유정형님도
어느 순간 옷을 포기하고 물에 들고 있었지요.
‘다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모두 긍정적이고 인상 찌푸리는 아이가 없어서 놀랐다...
옷을 갈아입었는데 뭔가 애들 씻기고 데려다주고 하는 일이 색달랐다.
정말 진정으로 봉사활동을 한 건 이것이 처음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새끼일꾼 가연이는 하루를 돌아보았습니다.

씻는 곳에서 준기의 목소리를 밖으로도 들립니다.
“저 여자 친구 있어요.”
“못 믿겠는데...”
“증거 있어요.”
그 증거는 도대체 무엇이었던 걸까요.
한기가 느껴진다며 베개고 이불이고 꺼내다 돌돌 말았던 아이들이
이곳을 오래 오가는 현진이한테 한 수 배우기도 하네요.
아이들한테 뒷정리 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도현이는 지난 겨울에 만났던 광주의 승인이가 같이 안와서
못내 서운합니다.
샘들한테 자꾸 압력을 넣네요,
겨울에는 만나게 해달라고.
이곳을 매개로 아이들이 좋은 우정들을 쌓아갑니다.
상민 창현 미래 손영 정복이는 한데모임에서
설거지를 돕겠다고 손 번쩍 든 아이들입니다.
특히 창현이랑 상민이 너무나 열정적이었지요.
‘남자의 의무는 여자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깊이 새긴 우리의 상민 선수,
내가 없으면 불안해 못믿겠다며
다른 모둠 설거지 하는 저녁에 팔 걷어붙이고 싱크대 앞으로 왔더랬지요.
“여기는 식단이 튼실한 것 같아요.”
밥상에 관심 많은 그가 부엌을 들어서며
한 번 더 크게 외친 말입니다.
이번 계자도 요리사 정익샘입니다.
정말 드물게 맛난 밥을 이 계자에서도 먹게 될 겝니다.

대동놀이.
샘들이 더 신이 났습니다.
“해주는 게 아니라 샘들도 먼저 하라!”
뛰고 구르고 소리 지르고
아이들보다 더 즐기는 모습으로
아이들의 즐거움을 부추깁니다.
이어달리기로 몸을 푸는 건 기본이고
크게 하나가 되어 노래와 놀이를 즐기다 보니
하루가 또 이렇게 성큼입니다.

이번 애들은 순하다는데, 다들 말을 잘 듣는다는데,
정말일까요?
지내봐야 알 일이지만
분명 샘들이 좀 편할 거는 같습니다.
한편, 그런만큼 재미는 덜할 걸요.
역시 지내봐야 알 일입니다.

아무래도 부엌에 여성이 없으니
자잘한 살림은 더러 손이 필요할 듯합니다.
지난 계자는 김정희엄마가 있어서
정말 눈 한 번 안 돌리고 아이들 속에 있었더랬지요.
냉장고를 여니 마을 할머니들이 주신 깻잎이 아직 그대로입니다.
쪄서 밑반찬을 만듭니다.
계자 기간 중에도 일상처럼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정말 애들 데리고 한참을 사는 날들 같습니다.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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