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19.불날. 잠깐씩 빗방울

조회 수 1346 추천 수 0 2008.09.13 23:53:00

2008. 8.19.불날. 잠깐씩 빗방울


해지는 저녁이 좋습니다.
싸울 태세로 있던 것들이 모두 무기를 내려놓습니다.
뙤약볕 아래 서면 모든 존재들이 그리 날 선 듯하지요.
해거름이 시작되려하면 저녁을 하러 갑니다.
한여름에 굴뚝 달린 솥단지에 밥을 하진 않지요.
그래서 뒤란에 솥을 거는 화덕이 있었던 겁니다.
마당에 깐 멍석 위나 감나무 그늘에 놓인 평상에서,
또는 하늘 그늘이 내린 마당 한 가운데서 밥을 먹습니다.
비로소 ‘평화’입니다.
오늘 저녁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산에 삽니다.
도시의 이 시간은 밝은 불이 다시 어둠을 몰아낼 것이므로
저녁이 되어도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긴장하며
무기를 들고 서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데요.
그래서 이 산이, 이 산골이 좋습니다.

옥수수를 거두었습니다.
호두나무 아래 밭도 가득하지만
간장집 텃밭 것부터 따 내립니다,
마지막 계자에선 아이들한테 쪄줄 수 있었는데,
이걸 따올 짬을 못 냈던 걸 아쉬워라 안타까워라 하며.
오는 길에 윤하삼할아버지 내외분이 마루에 앉아계셨습니다.
“옥수수 좀 하셨어요?”
“아직 우리는 안 영글었어.”
있다 그래도 우리 것 맛보라 드렸을 터입니다.
“알이 시원찮아요.”
“아이구, 굵네.”
아랫집 할머니네도 드립니다.
“옥수수 안 심으셨지요?”
껍질을 벗기다 역시 혼자 사시는 흙집이모할머니도 생각납니다.
“하다야, 거기도 좀 갖다 드리고 와라.”
제법 실합니다.
저들이 잘 커주었습니다.
여름, 제 때 들여다보지도 못했는데 그리 커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류옥하다도 계자 갈무리정리를 같이 합니다.
아이들이 던져놓고 간 젓가락 돔하우스들이 온 방을 차지하고 있지요.
분리작업을 합니다, 청테이프는 청테이프대로, 나무젓가락은 그것대로.
그게 더 비효율적이지요, 비용이든 시간이든.
시간을 이렇게 들이느니 젓가락을 사는 게 훨 싸지요.
하지만 한정적인 지구 에너지 문제로 보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전지구적관점에서 보자면 다시 쓰는 게 이익이다마다요.
마주 앉아 수다를 떨며
꼭 구슬꿰기며 마늘 까는 부업을 하는
달동네 아줌마들 같다며 웃었습니다.
그러다 맡겨둡니다.
혼자 하기는 얼마나 심드렁헐꺼나 싶지만
교무실로도 달려가야 했지요.

한살림에서 강연요청입니다.
9월에 서울에서 두 주를 걸쳐 주중에 하자는데,
그거야 아주 안 될 일이지요.
하여 9월 주말 하루로 몰아서 하자는 의논도 있었는데,
글쎄, 거기까지 가는 일부터가 반생태적이겠다며
가까이서 강의할 분을 한 번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좀 기다려보고 요청한 주제를 다룰 다른 이가 없겠다 싶으면
또 다녀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054 2009. 1.29.나무날. 흐림 옥영경 2009-02-06 1325
1053 4월 빈들 닫는 날 / 2009. 4.26.해날. 는개비 멎고 옥영경 2009-05-10 1325
1052 2009. 7.23.나무날. 조금 흐렸던 하늘 / 갈기산행 옥영경 2009-07-30 1325
1051 140 계자 갈무리글 옥영경 2010-08-26 1325
1050 150 계자 이튿날, 2012. 1. 9.달날. 눈 내릴 것 같은 아침, 흐린 밤하늘 옥영경 2012-01-17 1325
1049 12월 25일 쇠날 맑음, 학술제가 있는 매듭잔치-하나 옥영경 2005-01-02 1326
1048 5월 10일 불날 겨울과 여름을 오가는 옥영경 2005-05-14 1326
1047 2006.5.11.나무날 / 110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6-05-13 1326
1046 2007. 6.15.쇠날. 흐림 옥영경 2007-06-28 1326
1045 2007.11. 7.물날. 낮은 하늘 옥영경 2007-11-19 1326
1044 2008.10.19.해날. 가라앉아가는 하늘 옥영경 2008-10-28 1326
1043 2009. 1.27.불날. 맑음 옥영경 2009-02-06 1326
1042 143 계자 이튿날, 2011. 1.10.달날. 맑음 옥영경 2011-01-12 1326
1041 2011.11.15.불날. 맑음 옥영경 2011-11-23 1326
1040 154 계자(2013.1.6~11) 갈무리글(2013.1.11) 옥영경 2013-01-17 1326
1039 [포르투갈 통신] 2018. 4.22.해날. 맑음 옥영경 2018-04-28 1326
1038 5월 17일 불날 흐리더니 밤엔 비바람이 옥영경 2005-05-22 1327
1037 5월 26일 나무날 맑음, 봄학기 끝 옥영경 2005-05-27 1327
1036 7월 19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5-07-27 1327
1035 2007.11. 2.쇠날. 바람 옥영경 2007-11-13 132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