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22.쇠날. 밤마다 비오는 날들

조회 수 1280 추천 수 0 2008.09.13 23:54:00

2008. 8.22.쇠날. 밤마다 비오는 날들


“이제 때가 됐어요. 해바라기 수확할 거예요.”
어제부터 아이가 벼르고 있더니
종일 뵈질 않았습니다.
쉬엄쉬엄 일도 하고 졸기도 하다
그러다 식구들 밥상을 차려내는 느린 움직인 사이로
아이가 어느 순간 쏜살같이 달려와 쑤욱 주먹을 내밀었네요.
해바라기씨입니다.
그리고 엄마 손을 붙잡고 제가 따서 널어놓은 씨앗을 보여주러 갑니다.
국대접보다 냉면그릇보다도 더 커다란 해바라기 꽃주머니가 있었지요.
“내 오줌의 힘이라니까...”
실합니다.
씨앗을 심고 여름날을 내내 돌보고 그리고 수확을 했습니다.
그게 고스란히 배움의 과정이었지요.
해바라기처럼 아이가 웃고 있습니다.
해바라기가 아직 거기 피어 있는 겁니다.

‘황금마차’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 부릅니다.
생활용품에서부터 왼갖 걸 싣고 등장하는 트럭가게이지요.
가게가 없는 이 산골에서 새벽 점심 저녁에 나가는 버스를 타지 않아도
우유 같은 비저장성 재료들을 구할 수 있는 것도 그곳입니다.
약장수처럼 신바람 나는 음악을 틀고 마을로 들어오지요.
마을 안에서는 노래가 멎고 상품 목록이 이어집니다.
이모할머니라 부르는 앞집 할머니가 거기서 장을 봐오십니다.
까만 봉지를 털래털래 들고 오십니다.
마을 사랑방 같은 학교 앞 할머니댁에서 모여 도란거리다
황금마차에서 두부 한 모쯤 사신 걸까요?
당신 걸음이 참 많이 쓸쓸해지셨습니다.
물꼬가 여기 처음 왔던 게 96년 가을이었으니
십년도 더 넘어 되었지요.
두 분 정답게 사시다 할아버지 자리에 누우시고 몇 해
혼자 되셨습니다.
그러고도 또 몇 해가 흘렀지요.
사람 사는 일이 참 부질없다가
그게 또 자연스러움이겠구나 받아들이고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밭에 들고 공부하고
그렇게 삶을 채워가는 이 산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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