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25.달날. 맑음

조회 수 1322 추천 수 0 2008.09.15 21:19:00

2008. 8.25.달날. 맑음


식구들 쓰레기 분리수거 재교육을 합니다.
늘 하는 사람만 맡아서 할 게 아니라
서로 잘 익히고 있으면 맡은 이의 일도 줄게 되지요.
버리면서부터 신경 쓰게 되니까요.
산골 삶 자급을 목표로 하지만
여전히 들어오는 것들이 많습니다,
계자 때처럼 아주 많은 양은 아니나.
무엇보다 이런 시간은
우리가 쓰고 사는 것에 대해 곰곰이 또 생각해보게 하지요.
자원봉사를 오는 친구들에게도
쓰레기를 마주하는 일이 좋은 공부가 됩니다.
새끼일꾼들 같은 경우야 겨우 손가락을 겨우 옴작거리며
버려진 더러운 것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일을 받지만
적어도 품앗이샘들에게는
환경을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들이 되는 걸 보아왔지요.

품앗이 서현샘네(사회과학동아리)서
다섯이 주말에 온다 연락이 왔습니다.
아직 새 화장실 흙벽이 완성되지 못했거든요.
임시로 마감을 했던 것을 계자가 끝난 뒤 뜯어냈습니다.
아직 쌓아야할 벽은 높답니다.
그걸 위해 모인다 했지요.

가까운 한 대학을 갑니다,
제가 하는 강의실이 아니라 듣는 강의실로.
다시 한 학기가 시작됩니다.
별 기대도 없이 꾸역꾸역 가봅니다,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친구는 개강일이 되어 학교로 돌아갈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나요.
특정 교수 때문이랍니다.
설렘이 아닙니다, 지독한 스트레스로 그렇답니다.
새로 시작하는 지점이 즐거움이지 못하고
고삐에 끌려가는 송아지 같아 마음 씁쓸합니다.
일단 해보지요.
그러다 정말 아니다 싶으면 그 때는 말지요, 뭐.

같은 강의실에서 더러 힘이 되었던 친구가 인사를 왔습니다.
휴학을 한답니다.
경제적인 까닭도 있지만 그게 또 다가 아닙니다.
말 무성했던 바닥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이 힘겨웠던 건 아닐까요,
애고 어른이고 다 유아가 되어버린 듯한 회의는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그 물에서 탈출한 그에게 손뼉을 쳐주어야 하나,
아니면 돈 많이 벌라 격려해야 하나,
그의 등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사는 일이 누군에겐들 녹록하려나요.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만났던 문제를 바로 거기서 마주하지요,
‘내’가 달라지지 않는 한.
씩씩하게 잘 살다 돌아온 그를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을 잘 빌려다보는 몇 도서관 가운데 하나를 들립니다.
방학에도 열심히 책을 빌려다 봤지요,
계자 때야 꼼짝 못했지만.
그래서 반납일에 맞춰 산골을 빠져나가기가 어렵겠다 사정 말씀드려보았더니
확인 전화를 달라셨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연결되지 못했지요.
그래서 걱정 안고 간 걸음이었답니다.
원칙, 그거 중요하다마다요.
그러나 그것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던가요.
그가 한 배려로 연체에도 다시 책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특혜의 이름은 사정을 헤아리는 배려로 대체될 수도 있겠습니다.
늘 그렇지요, 정치도 사기가 종이 한 장 차이,
천재도 천치도 종이 한 장,
특혜와 배려도 그러하겠다 싶습니다.
결국 어떤 관점에서 어찌 쓰이느냐 아닐지요.
교육과 사기도 마찬가지겠습니다.
혹시 내가 하는 건 교육이 아니라 사기 아닐까,
이 시대의 교육은 교육이 맞는가,
혹 교실에서 강의실에서 사기를 치는 사람이 더 많지는 않은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담보로 잡아
쓰잘데기 없는 지식을 주며 마치 그게 대단한 것인 양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자기 존재나 확인하는 이들이 교단에 서있는 건 아닌가,
학생들을 격려하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질책이나 하며 숨소리도 못 내게 무시하고 모멸감을 주지는 않는가,
생각은 그렇게 가지 뻗어가고 있었지요.

새로운 학기(물꼬의 학기가 아니라)를 시작하는 일이
왜 이리 씁쓸하답니까.
그대도 사는 일이 지겨울 때가 있으신지요?
학교 다니기 싫다던 아이들의 심정이 이런 것은 아닐지요.
저녁에 열무김치를 담았습니다.
다듬고 자르는데 칼자루에 힘이 들어갑니다.
아주 가라앉았던 기분을 끌어올려봅니다.
김치를 담으며 삶의 의지를 다졌다?
‘열무는 삶이다(생활이란 의미가 아니라 죽음의 반대말로서)!’
김치는 내가 더 살겠다는 말이겠습니다.
한참을 먹을 반찬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게 열무는 삶이었습니다!
이러면서 사람들은
나날을 자신의 삶에 더하며 나아들 가겠구나 싶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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