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30.흙날. 맑음

조회 수 1167 추천 수 0 2008.09.15 21:22:00

2008. 8.30.흙날. 맑음


잊을 만하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곳에서 연락이 옵니다.
한 프로그램에서 또 연락을 받았는데,
워낙 영향력이 큰 프로입니다.
산골 텔레비전도 없이 사는 우리들도 아니까요.
연례행사처럼 그곳에서 꼭 오는데,
케이블에서 내내 재방을 하는데다
요새는 너무 신파조여서 더욱 경계가 되는.
거절입니다.

오늘은 스님이 두 분이나 다녀가시네요.
그러고 보니 두 분 다 김천에서 넘어오셨습니다.
한 때 이곳에서 학업을 하던 아이의 아버지가
절집을 가셨습니다.
오래 방황하던 그가 이제 당신 자리로 가셨나 싶어
고마움 큽니다.
돌아 돌아 그렇게 다들 자기 자리로 간다 싶습니다.

오후에 오신 스님은 한 박물관의 관장으로 계신데,
우리나라 탁본의 대가이십니다.
30년을 넘게 절집에 사셨지요.
제게 거룩한 안내자이기도 한 당신이십니다.
작년까지는 달에 한 차례 공부모임이 있어 뵐 수 있었는데
올해는 통 뵙지 못하고 있었지요.
얼마 전 당신은
‘돌에 새긴 선사 유목민의 삶과 꿈
- 몽골의 암각화·사슴돌·비문 탑본전’을,
지난 6월에는 몽골 중앙역사박물관에서,
올 7~8월에는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여셨습니다.
당신의 걸음 걸음이 다 가르침이십니다.
가끔 저는 당신의 걸음 그림자 안을 기웃거리고는 하지요,
당신은 아지 못하실 것이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꽃피는 날보다는 비바람 부는 때가, 파안대소 할 일보다는 이마에 주름지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싶습니다. 혹시, 산다는 노력이 절망스러운 적은 없으셨나요? 곤궁과 고통이 인간의 품성을 기르는 큰 힘이자 생애를 풍부하게 하는 자양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철저히 개별적인 고통 앞에서 우리는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해가 바뀌었습니다. 올 한 해 삶이 보여주고 선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선입견 없는 애정을 가지고 인생을 즐길 수는 없는지요.
; 어느 해 들머리 강극성의 시 한 수 말미에 붙이신 스님의 글

하기야 앞선 걸음이 다 가르침이지요,
그래서 先生이라 하는 거구요.
나이 들고 나면 더욱 곧게 걸을 일입니다.
잘 살아야지 합니다,
늘 하는 생각입니다만.
귀한 걸음 맞으며
나 역시 귀해진 듯하여 마음이 들뜹니다.
참 좋습니다.

공동체에 관심 있는 한 분이 방문하셨습니다.
식구들 김천 나간 길에 함께 들어옵니다.
하룻밤 묵어가실 거지요.
얘길 들어보니 그냥 잘 기대고 살 이웃이 필요하신 듯했습니다.
그렇다면 외려 지금 귀농해서 살고 계시다는
괴산이 더 적절하지 않을지요.
물꼬가 유기농사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으니까요.
다들 그냥 사는 곳에서 잘 뿌리 박았음 좋겠습니다.
별 곳도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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