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31.해날. 흐릿해지는 오후

조회 수 1328 추천 수 0 2008.09.15 21:26:00

2008. 8.31.해날. 흐릿해지는 오후


9월을 준비하느라 바쁜 주말입니다.
일을 나눠 곳곳으로 흩어집니다.
기락샘과 류옥하다는 본관을 청소하고
방문자 이상란님과 저는 달골에 올라
부엌에 온통 찾아든 곰팡이를 치웁니다.
맥주가 터져 분수처럼 오른 일이 있었는데
그게 미치지 않았던 곳이 없었던가 봅니다.
무늬처럼 곳곳을 장식하며 곰팡이 일어났지요.
숙제처럼 있더니 계자 끝내고서야 치우게 됩니다.
목수샘은 수도를 손보고
소사아저씨는 버섯(표고목)을 눕혔습니다.
한동안 또 버섯이 밥상을 다 차지할 테지요.

조중조아저씨랑 윤하삼할아버지가
학교 나무 그늘로 놀러오셨습니다.
“국수 같이 먹어요.”
불러도 잘 아니 오시는데,
오늘은 단단히 다짐을 받았지요.
짬이 나니 괜찮다고
별 거 안 하고 그냥 국수 하나 달랑 삶을 란다고.
들어오셔서 술도 한 잔 기울이고 가셨답니다.
이럴 때마다 사는 일 참 별 거 아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다 그런 맘 들지요.
산골 삶이 참 좋다, 그리 되내이게도 되구요.

마을에 드나드는 이들이 많습니다.
벌초를 하러 오거나 도로 건설현장이 있어서도 그러할 겁니다.
사람이 모이면 그 만큼 또 일도 많습니다.
시절이 수상할 땐 더하지요.
다들 어렵다는 날들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이는 풀섶에 지갑을 두었는데 누가 들고 갔다고도 하네요.
별 수 없지요.
잘 간수하는 게 방법이겠습니다.
그래도 가져가려고 뎀비는 힘을 어찌 이길까만
그래도 견물생심이라고 뵈지 않으면 가져갈 일도 줄겠지요.

어려운 시간을 건너가는 품앗이의 연락입니다.
이런 것도 물꼬가 하는 순기능일 테지요.
굳이 상담이랄 것은 아니고
얘기를 들음으로써 주는 위로와 위안 말입니다.
문제를 어찌 해결해 줄 수 있을까만,
듣는 거 그건 할 수 있거든요.
대상관계이론에서 오토 컨버그가
자아 건강의 조건으로 내세우던 세 가지도 오가는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불안을 견딜 수 있는 용기,
충동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승화 역량의 발달.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의 고통은
어느새 내 이야기입니다.
흔히 우리가 문제를 마주할 때
사실 그건 반복이기가 쉽습니다.
헌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역시 동일할 때가 많지요.
과거의 영광의 날들을 부여잡고 회고하고 있거나
여전히 그때의 가치로 지금을 살고 있기 일쑤이지요.
그 낡은 것들을 붙잡고 용을 씁니다.
몸은 현재에 있고 생각은 늘 과거에 있다던가요.
아, 정녕 이게 무슨 짓이란 말입니까.
변화가 필요하지요.
관계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남을 고치려고 하면 병이 됩니다.
‘날’ 고쳐야 상대가 바뀌지요.
답답함을 호소하려고 건 품앗이의 전화에
대답은 자신에게로 하고 있습니다.
네, 그래서 오늘 ‘나 고치기’를 시작합니다.
말도 안되는 권력을 내세워 불이익을 주는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오던,
그래서 한동안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리하여 공개적으로 문제를 거론하는 것 말고는 길이 보이지 않아 고민되던
바깥의 한 관계를 향해 말입니다,
그가 '나 고치기'를 하길 바라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므로.
어제까지도 도덕경의 마지막 구절을 들먹이며
'군자의 도는 다투지 않는 데 있다는데 우리는 군자가 아닌께로...',
달포 넘은 고민이 그렇게 다툴 마음으로 기울었더랬는데 말입니다.
산골에 살아도 마음이 이리 소란합니다.
그게 또 사람살이거니 하고 유쾌하고 가볍게 바라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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