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7.해날. 맑음

조회 수 1309 추천 수 0 2008.09.21 21:46:00

2008. 9. 7.해날. 맑음


백로입니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드는 시작입니다.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져 대기 중 수증기 엉켜 풀잎에 이슬 맺힌다는 날입니다.
그게 허얘서 백로인 게지요.
‘백로 안에 벼 안팬 집에는 가지도 말아라’던가요.
이즈음엔 출수를 해야 한다 했습니다.
논에 물을 빼고 말려 추수를 준비한다는 때입니다.
하지만 이 산골의 추수는 더딘데다
우리 논은 해마다 마을에서 맨 마지막으로 거둡니다.
올해도 그러하네요.
아직 물 찰방거리고 있답니다.
첫 포도도 이 날 딴다 했습니다.
첫 포도를 따서 사당에 먼저 고하고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는 풍습이 있다고도 했지요.
백로가 되면
제비가 돌아가고 기러기 날아오며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 하였습니다.
어디는 백로가 비가 와야 좋다고도 하지만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는 말처럼
열매 여물기엔 맑은 날이 낫다마다요.

이때쯤 이 마을에선 호도를 땁니다.
자연스레 떨어져 내릴 때 주우면 어떨까 싶지만
그러면 이미 벌레와 다람쥐 청솔모들이 재빨리 다녀가지요.
우리는 다음 주 달날에 추석 쇠고 오는 식구들 다 모이면
호도 따 내리기로 하였답니다.
학교 둘레도 몇 그루에 달골에도 댓 그루 있지요.

화단을 정리 좀 합니다.
여름날에 손을 댈 짬이 없더랬습니다.
소사아저씨가 한켠에 가지를 칠 동안
덩굴 무성해진 다른 쪽을 걷어냅니다.
이 가을도 다음 계절을 준비하며 바쁘겠습니다.
그런데, 손전화를 어디다 떨어뜨리고 말았네요.
어디에도 없습니다.
늘 그렇지만 사람들이 답답겄습니다.
하도 연락이 닿지 않자 바깥에서 사서 보내온 전화기였지요.
쓰기 시작하니 생활의 큰 부분이 되더니
이젠 어째야 하나요...

일을 하다 잠시 연장을 내려놓고 땀을 걷는 시간,
아이랑 ‘현재를 산다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눕니다.
마오리족은 감옥에 갇히는 순간 죽는다던가요.
어떤 강한 나라도 지배할 수 없었던 그들인데 말입니다.
그들은 늘 현재를 살기 때문에
감옥에서 풀리는 미래를 생각지 못하는 거지요.
시드니 폴락의 는 그거 아니어도 생각할 게 많은 영화였지만
이 대사가 오래 남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20년도 더 된 영화이네요.
카렌에게 삶의 지침이 되었던 데니스의 나침반,
어쩌면 제가 좋은 나침반을 갖고 싶었던 건
이 영화를 본 이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나침반...
그대의 삶은 무엇이 그 역할을 하는지요?

모두 방으로 돌아간 밤,
홀로 잠시 마당 한 가운데 서서 생각에 잠깁니다.
‘신은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게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
구약 욥기의 3장에 있는 구절이라던가요.
그 의미는 정녕 무엇일까요?
생각이 많은 것보니
가을이 시작 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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