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8.달날. 맑음

조회 수 1096 추천 수 0 2008.09.26 23:42:00

2008. 9. 8.달날. 맑음


까마귀가 오래 울었습니다.
사람 하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입니다.
따스하고 후덕한 표정이 다른 사람들을 다사롭게 만들던 이었습니다.
‘생이 참 길다...’
울적한 아침이었지요.
느티나무 아래서 듣던 까마귀들의 울음은
그에 대한 진혼곡이었나 봅니다.
“그런 마음을 자신이 이겨내지 못해서 그래.”
한 어른의 자살에 대해 아이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제 놈이 뭘 안단 말입니까.
하지만 삶에 대한 이해란 건 어차피 자기 삶의 무게 만큼이지 않을지요.
아이는 오늘도 유쾌합니다.
그런 그는 어른들의 가라앉은 기분을 올려주기에 충분했지요.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영향을 주는 법 아니던가요.
유쾌하게 지내야겠습니다, 아이들처럼.

산골에 홀로 지내고 있는 아이에게도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가끔 멀리서 예닐곱의 아이들이 와서 한참을 지내기도 할 테고
오는 겨울에도 마흔댓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함께 있을 때도 있겠지만
많은 가을날은 그 아이가 혼자 산골 학교를 지킬 것입니다.
오늘부터 가을학기 흐름잡기를 하네요.
주를 시작하는 달날 첫 시간은
한 대학에서 외국인이 진행하는 영어수업을 같이 들어가기로 하였지요.
미리 말씀을 드려 놓았더랬습니다.
그 첫 시간이 오늘 아침이었지요.
아주 어릴 때이긴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다른 여러 나라에서 보낸 경험은
낯선 상황 앞에서도 아이를 어렵지 않게 하나 봅니다.
큰 형아 누나들보다 더 큰 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를 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지역도서관으로 넘어가
거기 있는 영어책들로 공부를 했답니다.

임시식구모임이 있었습니다.
논물 때문이었지요.
벼농사는 늘 물농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 물이 필요한데, 가물어 물줄기가 아주 가늡니다.
다른 논들도 다르지 않겠지요.
그러니 수로 따라 내려오며 논논이 물이 들고 나면
아래는 애가 타기 마련입니다.
벼 베기 스무 날 전 정도에 물을 떼니
아직은 물힘이 필요하고 걸러대기를 해줘야 하지요.
‘이삭이 익는 시기에는 물을 2~3cm로 얕게 대거나 물을 걸러대야 한다.’
어느 지침서에서 그리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러하지요.
손으로 일일이 하는 더딘 공사에 목수샘이 내내 매달려 있으니
논 막바지 물관리는 소사아저씨가 맡기로 했답니다.
손이 덜 가서 힘겨울 모인 듯하더니
그래도 목을 길게 빼며 올라오는 우리 논의 벼이삭들이지요.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54 4월 물꼬stay 닫는 날, 2019. 4.21.해날. 맑음 옥영경 2019-05-20 17928
6653 2012. 4. 7.흙날. 달빛 환한 옥영경 2012-04-17 8366
6652 민건협 양상현샘 옥영경 2003-11-08 5139
6651 6157부대 옥영경 2004-01-01 4794
6650 가족학교 '바탕'의 김용달샘 옥영경 2003-11-11 4660
6649 2019. 3. 3.해날. 흐림 옥영경 2019-04-04 4631
6648 완기의 어머니, 유민의 아버지 옥영경 2003-11-06 4612
6647 대해리 바람판 옥영경 2003-11-12 4596
6646 흙그릇 만들러 다니는 하다 신상범 2003-11-07 4572
6645 2019. 2.28.나무날. 흐림 / 홈그라운드! 옥영경 2019-04-04 4556
6644 뚝딱뚝딱 계절학교 마치고 옥영경 2003-11-11 4538
6643 너무 건조하지 않느냐길래 옥영경 2003-11-04 4517
6642 이불빨래와 이현님샘 옥영경 2003-11-08 4493
6641 출장 나흘 옥영경 2003-11-21 4366
6640 122 계자 닫는 날, 2008. 1. 4.쇠날.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1-08 4256
6639 2019. 3.22.쇠날. 맑음 / 두 곳의 작업현장, 아침뜨樂과 햇발동 옥영경 2019-04-04 3987
6638 2008. 4.26.흙날. 바람 불고 추웠으나 / 네 돌잔치 옥영경 2008-05-15 3833
6637 6월 14일, 류옥하다 생일잔치 옥영경 2004-06-19 3793
6636 123 계자 닫는 날, 2008. 1.11.쇠날.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1-17 3728
6635 6월 18일, 숲 속에 차린 밥상 옥영경 2004-06-20 372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