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13-15. 흙-달날. 가끔 구름도 있던 한가위 연휴

조회 수 1351 추천 수 0 2008.09.26 23:45:00

2008. 9. 13-15. 흙-달날. 가끔 구름도 있던 한가위 연휴


한가위 연휴입니다.
공동체 식구들이 명절을 쇠러 떠나면
홀로 남거나 소사아저씨랑
이 골짝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맞지요.
고향이 없는 이가 다녀가기도 하고
더러 지나며 인사를 하러 들렀다 가기도 하고
잠시 쉬러 사람들이 오기도 합니다.
해마다 여기서 명절을 맞는 논두렁도 있지요.
올 추석도 그가 왔습니다.
“영욱이가 그러는데...”
지난 달이던가 다녀간, 도 닦고 있는 선사 선배 얘기를 전했지요.
“학교(물론 물꼬이지요)가 기운이 엄청 세다네.
암기운과 수기운이 만나...”
그래서 사람이 버티고 살기 쉽잖을 곳이라나요.
그 기운을 다스리며 살 수 있는 이가 살아남을 곳이랍니다.
“너나 되니까 산단다야.”
에그머니나, 그러면 내가 기운이 세다?
뭐 대단히 거친 사람인 것만 같아 화들짝 놀랍니다.
하지만 기운이 세다는 것이 꼭 강함만을 말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드럽게 끌어안는 방법도 있을 테니까요.
“달골은 더 세단다.”
“나한테는 아무 소리도 안하더니...”
“그나마 높은 건물과 지붕이 제압을 좀 해준단다.
거기 건물 세우기 잘 했다.”
재미난 얘기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세계를 이해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의 시선일 테지요.
지리산 삼성궁에 있는 한풀선사며 거제도 강선사며
도 닦는 선배들이 있으니 이런 이야기도 듣게 되데요.
땅 기운이 어떻거나 말거나
잘 모르겠는 범부로서는 그저 잘 다지며 살면 될 일이겠습니다.

유설샘 소개로 윤소정님이 방문했습니다.
가장 가까웠던 이를 떠나보내고
어려운 시간을 건너가는 그가 와서 손발을 보탰지요.
명절을 같이 쇠면 금새 가족 같아집니다.
아이랑 청소도 하고,
때마다 설거지며 뒷정리를 맡아했지요.
처음 왔는데 낯설지 않게 일을 대하니
보는 이도 퍽 평온했습니다,
자신은 또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내내 숙제 같았던 요가매트들도 다 씻어 말려주었지요.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좋은 연으로 오래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마음을 꼭 표현하고 싶다고 후원금도 놓고 떠났지요.
고맙습니다.

천안에도 다녀옵니다.
아라리오 갤러리에 들렀지요.
제게 천안은 그 갤러리가 대명사입니다.
서울까지 먼 길이니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을 때
천안이나 대전의 이응노미술관으로 가지요.
이용백 개인전(플라스틱)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골 아줌마 문화생활 좀 해보는 거지요.
그리고 밥을 먹는 자리,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가라앉을 땐 어떻게 해?”
“그냥 주욱 살아, 그러다 내려가면 또 쭈욱 살고, ...”
사실 그리 절망도 않지만 그렇다고 삶에 희열이 크지도 않다 했습니다.
명상을 하는 사람답게 삶에 균형을 잘 유지하는 듯도 하고
사람이 참 밋밋하군, 싶기도 하데요.
어쨌든 그것도 지혜이겠습니다.
별 수도 없지요.
그러고 보면,
별 수 없지 않느냐, 그냥 주욱 사는 거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거다,
그리 말한 저랑도 다른 길이 아니겠습니다.

류옥하다 선수가 대해리로 먼저 들어왔습니다.
어째 기차랑 차편이 삐걱거려
실어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함께 차를 타고 오는 길은 또 얘기 풍성하지요.
“질경이와 민들레야 운동장에 깔렸으니 풀 매는 셈 치고 하지만...”
식량위기를 내다보며 그 대안으로 본격적으로 풀을 먹겠다 하니
아이는 생태계 전멸을 우려합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달겨들면 풀도 남아나지 않을 거랍니다.
“스프레이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그것이 이렇게 오존층을 파괴할 줄 몰랐어.”
그러니 잘 생각하라는 거지요.
“우선 물꼬가 소문내지 말고 잘 실험하고...”
아이의 조언이었답니다.
그래, 조용히, 먼저, 실험해보지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할 게 아니라,
이미 풀로 가득한 밭에서 그것과 씨름할 게 아니라,
쇠비름이며 명아주며를 더 번식시키고 먹는 방법들을 찾으려지요.
그렇게 풀 먹기 연습을 하려구요.
내년에는 할 일이 정말 많네요.

호두를 따려고 달골 나무 둘레에 풀을 다 정리했습니다.
베거나 눕혔지요.
원래는 공동체 식구들 다 모이는 달날 오후에 하려던 일이었는데
못 다 따서 주중에 따겄습니다.
떨어지는 게 많으면 산짐승들 잘 나눠먹는다 기뻐할라지요.

흐렸던 하늘로 달맞이를 못했던 한가위이더니
하루 지나 휘영청 오른 달 아래 마당을 거닙니다.
달은 언제나 인류에게 우주를 보는 창이었을 겝니다.
구긴 마음을 다리는 다리미가 다른 게 아니었네요.
달빛마냥 마음결 고와지는 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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