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17.물날. 맑음

조회 수 1117 추천 수 0 2008.10.04 12:50:00

2008. 9.17.물날. 맑음


식구들이 모여 앉아 포도알을 땁니다.
잼을 하든 효소를 담든 포도주를 담든
무엇을 해도 알맹이를 따야 하니까요.
뭘 먼저 하든 쓰일 거니까요.

밭가 호두를 텁니다.
긴 장대는 그 무게만으로도 몸이 휘청하는데
그걸 들고 가지 사이로 넣어 휘저어야 합니다.
나무도 잘 타야 하지만
땅 바닥에 놓는 발의 안정감처럼 두 다리를 잘 버팅기고 서야 하지요.
그런데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호두나무는 죽은 가지와 썩은 가지를 구분키 어렵습니다.
어쩌다 힘을 짱짱하게 준 발의 가지가 툭 분질러지며
그만 한 다리가 미끄러지는 일도 잦지요.
감을 따다가 장대가 닿기 어려운 맨 꼭대기는
두어 개의 알이 잎새 다 떨구고도
대롱거리며 가을 하늘 다 지나도록 달리고는 하지요.
이것을 까치밥이라 했고,
큰 시인 김남주는 그것을 조선의 마음이라 하였더이다.
우리가 남긴 몇 알의 호두알은 다람쥐밥이라 부르겠고,
그게 또한 조선의 마음일 테지요.
깔아놓은 천막이나 정리해놓은 풀섶에 떨어지면 다행이지만
어쩌나 돌더미 사이나 도랑으로 구르면
그게 찾아내기가 또 쉽잖지요.
하기야 호도 먹을 입이 어디 사람에게만 있을까요.
한 가마니만 가득 채워 마당으로 끌고 왔답니다.

지역의 한 대학이 곧 축제 기간입니다.
거기서 서명운동을 할까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
축제 관련 부처의 사람 하나를 만났는데,
“우리도 결식아동도 많은데...”
라고 하다가 아차 싶었던지
“좋은 일 하시네요.”
그렇게 말이 끝나데요.
적지 않은, 그러니까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반응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위해 그대는 뭘 하셨죠?”
그런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것도 아닙니다.
이 문제만큼은 논쟁의 범주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데 밥 말고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요.
학생회에서 일하는 두어 친구도 만납니다.
학술제 공간에 부스 하나를 신청하였지요.
‘먹고 놀고’가 아니라 의미 있는 일도 있다면
축제가 외려 더 풍성하지 않겠는가, 그리 설득했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한 일이지요.
내 새끼가, 내 부모가 그리 굶고 있다면
누구라도 움직이지 않겠는지요.
저는 사람들에게 밥을 빌러 갈 것입니다,
뻣뻣한 나를 눕히고 또 눕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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