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24.물날. 비 내린 뒤 흐림

조회 수 1137 추천 수 0 2008.10.10 17:40:00

2008. 9.24.물날. 비 내린 뒤 흐림


읍내 장을 나갔습니다.
물론 예전 같은 활기는 없습니다.
할머니들은 너무 오래 앉았고,
좌판엔 아직도 쌓인 야채들이 아침보다 별 줄어든 것 같습니다.
생선은 생기를 잃었고,
생선장수는 너무 오래 칼질을 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도 장날이라면 아직도 거래가 심심찮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먹을 만큼 한다는 농사이지만
여전히 사서 들여야 할 것도 많습니다.
건어물도 좀 사고 바닷 것들도 사고,
우리는 다 먹어버린 쪽파도 좀 사고...
묵직하던 어깨를 위해 침도 맞고 들어왔지요.
할머니들이 으레 장날이면 들린다는 한의원에
산골짝 할머니처럼 그리 들렀다 옵니다.

지역에 있는 한 대학의 학술제에 부스 하나를 얻어
어제는 ‘한반도의 화해와평화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했습니다.
나설 무렵에야 생각이 나
서둘러 ‘밥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이라고 현수막 하나 썼더랬지요.
채 마르지 않은 걸 들고나가 얼룩이 지곤 하였으나
어디서 썼냐고 특이하다고 모두 한 마디씩을 했습니다.
우리 학교 다닐 적 이 모든 건 당연한 것들이었지요.
광목을 사고 자르고 쓰고 걸고...
예전에 직접했던 이런 일들이 이제 남의 손에 다 맡겨집니다.
집안에서 관장했던 출산과 장례식도
이제 더는 집안일이 아니지요.
새삼 현수막 하는 쓰는 일도
삶에 대한 기술 하나 된 시절이구나 싶데요.

어제 부스에 대자보와 현수막을 붙이고
지키는 사람이 없을 때도 오가는 이가 쓸 수 있도록
서명지와 펜을 펼쳐놓았는데,
젊은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고 제법 이름자를 써두기도 했더랍니다.
채식협회의 김성봉님과 이윤옥님도 오셔서 거들었지요.
오늘은 나가 있을 수가 없었는데,
얻어놓은 부스라 한 사람이라도 더 서명하기를 바라며
그대로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왔더라구요,
오늘은 아예 사람들이 없다고,
저녁에나 돼야 술 마시러들 오잖겠냐고.
정말 빈칸을 채운 이들이 몇 사람 안 되데요.
스산했고, 거의 철거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쨌든 고마운 일입니다.
밥을 빌었고,
그 밥을 먹을 이들이 있으니까요.
서명하지 않은 이들일지라도
우리가 어제 틀었던 영상에서
굶어 죽어가던 아이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배고픈 이에게는 어떤 조건 없이도 밥을 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좀 춰줬으면 좋겠는데...”
춤을 의뢰 받았습니다.
제 6차 통일축전 남북화해한마당이
오는 10월 19일 해날에 있지요.
전국에 흩어져있는 천여 명의 새터민들이 모이기도 하는 날입니다.
굶어 죽거나, 국경을 넘으며 혹은 망명지에서 죽어간
북한 동포들을 위로하는 진혼춤으로 마당을 열 계획이라지요.
마음이야 했으면 딱 좋겠습니다.
“영광이지요, 그런데 너무 오래 춤을 추지 않아서...”
아무래도 준비를 좀 해얄텐데, 그럴 짬을 낼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며칠 고민해보자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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