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29.달날. 비 내린 아침

조회 수 1264 추천 수 0 2008.10.10 18:10:00

2008. 9.29.달날. 비 내린 아침


가을비입니다.
마지막 논물이 될 것이고
열매들에겐 마지막 여름볕이 녹아있는 단물이 될 것입니다.
논을 돌아봅니다.
마침 물기가 없던 참입니다.
걸러대기라도 할 때인데,
때맞춰 땅이 젖고 있습니다.
고래방 앞 은행도 줍습니다.
사람이 돌보지 못할 때도 저들끼리 그리 잘도 컸습니다.

얼마 전 통일축전을 준비하는 곳으로부터 연락이 왔더랬지요.
제 6차 통일축전 남북화해한마당을 다음달 19일에 하는데,
굶어 죽거나, 국경을 넘으며 혹은 망명지에서 죽어간
북한 동포들을 위로하는 진혼춤으로 마당을 열 계획이라며
춤을 춰달라 하였습니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천여 명의 새터민들이 모이기도 하는 날이지요.
그런데 의상도 고쳐야 하고,
몸도 좀 풀어주어야 하고,
거기에 맞춰 안무도 해얄 거고...
늘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역시 시간이 젤 문제입니다.
시월 중순까지는 답체 짬을 내지 못할 일이 있어놔서
아무리 궁리해도 아니 되겠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춤추는 이들 몇에게 부탁도 해놓고,
정히 아니 되면 제가 가야지 했지요.
그런데 자원봉사자를 찾기가 쉽잖은데다
저도 도저히 사나흘(당일도 당일이지만 준비를 해얄 것이니)을 몸을 빼는 게
안 되겠다 결론 났지요.
결국 도와줄 수 없겠다 연락을 드리게 된 겁니다.
여기서도 젊을 때랑 달라졌구나 싶데요.
무리해서라도 어떡해든 내 일이면 하려 들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제는 안 되는 일은 할 수 없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그렇게 나이를 먹나 봅니다.

아이랑 영어공부를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주말을 벅차게 움직이고 나니
한 주 시작이 여간 괴롭지가 않습니다.
이제 늙어부렀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기 공부 시간 책을 들고 나타나
이것저것 묻습니다.
“오늘은 쓰는 거 하면 안 될까?”
그런데 아이는 저 혼자 낑낑 대며 책이랑 씨름을 하고 있었지요.
‘아이고, 아이가 저렇게 하려드는데 에미가 돼 가지고....’
얼른 정신을 수습했지요.
저리 하려 드는데 도와줘야지요.
하지만 몸이 곤하니 만만한 아이에게 짜증을 섞지요.
그런데 그걸 아이는 다 받아내고 있습니다.
엄마 힘들다고 양파 까고 반찬 꺼내고 부엌일에도 팔을 걷어 부치고 있었지요.
아이가 어른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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