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 1. 물날. 맑음

조회 수 1295 추천 수 0 2008.10.10 18:28:00

2008.10. 1. 물날. 맑음


“어, 따뜻해!”
아이가 호박에 손을 댔다가
그걸 다시 꼬옥 껴안았습니다.
어제 무밭으로 내려가는 밭둑에서 늙은 호박 하나 땄습니다.
그리고 나절가웃을 볕에 내놨더랬지요.
겨울에 아이들 오면 죽으로 밥상에 얹힐 호박입니다.
그런데 가마솥방에 들여놓은 호박에 아직 볕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쌀쌀한 아침에 말입니다.
다사로웠습니다.
볕이 머물다 간 자리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마음 또한 다사로워졌습니다.
고마울 일들입니다.
고추에도 깨에도 나락에도
고솜한 볕내음이 닿아서야 비로소 살이 된다 싶습디다.

모종을 낼 때 포트에 종자를 꼭 세 알은 넣습니다,
넘들은 또 어쩌나 모르겠습니다만.
쉬 썩어버릴 수도 있어 그러하고,
셋 다 무사히 자란다면 더할 나위 없지요.
사람과 날짐승과 들짐승이 하나씩 나눠 먹을 테니까요.
그걸 또 옮겨 심을 때도 굳이 따로 떼서 심지 않았습니다.
두어 개 쓰러져도 살아남을 놈이 있겠다는 바램이고
웬만큼 자라 비좁으면 솎아서 나물해먹으면 될 일이지요.
그게 그리 금새 커버렸네요,
곁엣 것들을 뽑아줘야 할 만치.
오늘은 그 배추로 겉절이를 해먹는 점심밥상이었습니다.

국군의 날입니다.
그들의 애씀에야 무슨 이의를 달 수 있을까요,
늘 문제는 전쟁이지요.
전쟁이라면 자주 아이들과 공부거리가 됩니다.
역사과목을 다룰 때도 그러하지만
늘상 다툼이 있는 인간사이고 보면
과목을 넘어 우리들 대화에 자주 등장하지요.
전쟁을 잘 다룬 작품이라면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만한 게 있을지요.
아직 아이들이 읽기엔 이르다 싶으니
조만간 영화를 틀어야겠습니다.
젊은이들이 스러져가지요,
무차별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인간의 존재란 얼마나 덧없는지요.
군복을 뒤집어 잡은 이를 호롱불에 넣으니 지지거립니다.
그처럼 최후에 살아남은 주인공은 1918년 가을의 어느 고요한 날에 전사하지요.
하지만 별 변화도 없는 그날의 전황에 사령부는 이리 기록합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누군가의 생명이 어떠한 의미도 내포되어있지 않다는 것은 잔혹한 이야기이다,
이 글을 읽은 이라면 열외 없이 그리 말했지요.
속-절-없-다....
어디 바람에 날리우는 꽃잎에만 그리 말하던가요.
행진하는 군인들은 그래서 서글프며
휴가 나온 군인은 그래서 늘 짠하다 싶습니다.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Long time passing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Long time ago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그런 노래가 있었지요.
꽃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어린 처자들이 꺾어갔지요.
그 어린 처자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요?

Gone to young men everyone
When will they ever learn?
Where have all the young men gone?
Gone to soldiers everyone
When will they ever learn?
Where have all the soldiers gone
Gone to grave-yards everyone

처자들이 따라간, 예전에 청년이었던 그들은 또 어디로 간 걸까요?
그 청년들은 군인이 되었고 군인들은 모두 무덤으로 갔다던가요.

Where have all the grave-yards gone
Gone to flowers everyone
When will they ever learn?
When will they ever learn?

무덤들은 모두 만발한 꽃들로 뒤덮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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