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5.물날. 맑음

조회 수 1114 추천 수 0 2008.10.28 12:32:00

2008.10.15.물날. 맑음


물날은 식구들이 같이들 일을 하는 주중의 하루입니다.
이번 학기 흐름은 또 이러하네요.
많지 않은 식구이고 공간은 넓으니 눈을 맞추고 일하기 드문데
외려 주말에는 함께 움직일 때가 많지요.
식구한데모임도 따로이 없이 밥상머리에서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없어서도 그러하지만 아이도 어느새 이 안에서 성큼 자라
어른 못잖은 몫을 해내지요.
오늘은 벽돌을 수레에 담아 나르고 있습니다.
일판에 나가면 날품 파는 이의 몫이던가요.
거기에 더해 오늘 따로 받은 일이 또 있습니다.
칠판을 긁는 일이지요.
벽에 붙은 초록칠판은 아이들 낙서용으로 쓰고
주로는 거기 앞으로 하얀칠판을 덧대어 쓰고 있는데,
지난 겨울 계자에 거기에 안내글자들을 붙이는 바람에
고스란히 양면테이프 자국들이 남은 것입니다.
전체살림을 하던 이가 자리를 비우고 나니
이런 자잘한 데서 오는 실수들이 잦네요.
하얀칠판을 계자 기간동안 떼두는 것을 잊은 거지요.
물론 살면 나아질 일들이겠습니다.

아이는 요새 가끔 사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 오랜 꿈이기도 하였지요.
언어를 ‘내’가 바라보는 눈으로 정의해내기 말입니다.
한 주 한 차례의 우리말글 시간을 그리 보내고 있습니다.
자판연습도 하네요.
이제 자신의 글을 지속적으로 인터넷 화면으로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
홈스쿨러들과 교통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때도 교무실 전화기 옆에는 손이 드물었지만
지금은 거의 앉은 때가 없는데,
아이가 오가며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
상담 전화까지는 어렵더라도
웬만큼 이곳 사정을 전하는 데는 무리가 없겠지요.
어찌나 야문지 따로 어른이 챙기지 않아도 될 만큼입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들지요.
이곳의 삶이 아이를 또 한켠 키워주고 있답니다.

어디 이곳에 상주하는 사람만이 이곳 식구더이까.
물꼬의 식구들은 참 넓게 삽니다.
오랜 품앗이일꾼들만 하더라도 식구에 다름 아니지요.
정작 그들이 꾸려온 이곳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논두렁도 논두렁이지만
공간을 지켜내고 꾸린 것에는 손발의 힘이 크다마다요.
사는 게 바쁘면 인사도 드뭅니다.
형길샘의 소식을 물었고
다시 소식이 와서 좋았습니다.
태석샘의 안부는 아이가 챙겨서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식을 들어 좋았지요.
일 많고 바람 잘날 없는 곳이어
(요새는 고요한 호수가 따로 없기도 합니다만)
그저 전화 한 통에도 마음 쓰일까 연락 못하다가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다 자기 몫이겠거니,
가을 하늘이 이리 높은데 이 한해를 또 어찌 건너가고 있나
몹시도 궁금하던 차입니다.
관례처럼 서로 얼굴을 보는 자리가 되는 여름과 겨울 계자,
그나마 올 여름을 다녀가지 못하기도 하여 그랬지요.
때로는 멀리 있더라도 잘 살고 있으면 그게 힘이겠습니다.
가족이란 게 서로를 갉지만 않아도,
아쉬운 소리만 안 해도 돕는 것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오랜 시간을 교류하고 사는 일도
참으로 고마울 일들입니다.

닷 마지기 논두렁을 쉬엄쉬엄 다른 일들 하는 틈틈에 풀을 다 베내고
오늘부터는 가장자리 벼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빠지지 않는 질퍽한 맨아랫다랑이는
절반 넘게 아주 다 베내야 콤바인이 움직일 수 있을 테지요.
아, 교육청과 새로 덧붙인 건물 등재 준비로
몇 가지가 오가기도 했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14 똥 푸던 날, 5월 6일 옥영경 2004-05-12 2552
6613 165 계자 닷샛날, 2020. 1.16.나무날. 맑음 / ‘저 너머 누가 살길래’-마고산 옥영경 2020-01-28 2550
6612 푸른누리 다녀오다 옥영경 2004-01-29 2549
6611 서울과 대구 출장기(3월 5-8일) 옥영경 2004-03-10 2538
6610 대동개발 주식회사 옥영경 2004-01-01 2537
6609 성현미샘 옥영경 2004-01-11 2518
6608 경복궁 대목수 조준형샘과 그 식구들 옥영경 2003-12-26 2487
6607 6월 6일, 미국에서 온 열 세 살 조성학 옥영경 2004-06-07 2484
6606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38 계자 옥영경 2004-01-06 2465
6605 장미상가 정수기 옥영경 2004-01-06 2462
6604 김기선샘과 이의선샘 옥영경 2003-12-10 2461
6603 물꼬 사람들이 사는 집 옥영경 2003-12-20 2436
6602 122 계자 이튿날, 2007.12.31.달날. 또 눈 옥영경 2008-01-03 2435
6601 새금강비료공사, 5월 11일 불날 옥영경 2004-05-12 2424
6600 장상욱님, 3월 12일 옥영경 2004-03-14 2374
6599 [바르셀로나 통신 3] 2018. 3. 2.쇠날. 흐림 / 사랑한, 사랑하는 그대에게 옥영경 2018-03-13 2350
6598 눈비산마을 가다 옥영경 2004-01-29 2344
6597 주간동아와 KBS 현장르포 제 3지대 옥영경 2004-04-13 2323
6596 새해맞이 산행기-정월 초하루, 초이틀 옥영경 2004-01-03 2301
6595 계자 열 이틀째 1월 16일 쇠날 옥영경 2004-01-17 229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