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5.흙날. 맑음

조회 수 1362 추천 수 0 2008.11.02 16:37:00

2008.10.25.흙날. 맑음


태석샘이 왔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식구들이 많이도 그리워했던 그입니다.
장가를 가니 또 나름의 일들이 많을 테지요.
주말에 한 번 빠져나오기도 쉽잖을 것입니다.
그래도 ‘고향이 따로 없다’며 짬을 낸 셈입니다.
말은 아니 했지만 월동 준비하는 날인 줄 알고 왔을 겝니다.
멀리서도 이런 마음을 받으며 물꼬가 살아갑니다.

경희대 사회과학 동아리 ‘너머’에서도 아홉의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2008년 너머 가을 필드트립’이랍니다.
품앗이 서현샘이 후배들을 데리고 온 거지요.
영현샘 성준샘 승형샘 나영샘 미경샘 김진주샘 백진주샘 혜리샘이
함께 했습니다.
밑반찬이며 고기, 마실 것들도 이것저것 챙겨왔데요.
지난번에 운지랑 무열이 오면서도 여서 구할 수 없는 것으로
저들 먹을 것들이라며 다 챙겨서 오더니,
이제 시근이 드니 여기 사는 형편들을 살펴주는 기특한 젊은이들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기차를 놓치니 대해리까지 들어오는 버스를 놓치고
게다 흘목 지나는 버스를 타고는 그만 물한주차장까지 갔다네요.
“마지막 종점인 줄 알았어요.”
“아이고 힘을 덜어주러 오는 거야, 일을 만들러 오는 거야?”
미안한 서현샘은 걸어서라도 학교까지 들어온다는데,
태석샘이랑 종대샘이 나가 실어왔답니다.
“제 때 차 시간 맞춰 들어오는 것만도 돕는 거라니까!”
그예 또 한 소리를 더 붙였지요.
그래도 연탄 배달 시간이랑 용케 잘들 맞추었습니다.

1톤 트럭 한 대에 천 장을 싣는답니다.
먼저 들어온 차에서 연탄을 내리고 그리고 올립니다.
된장집 오르는 가파란 계단으로 그리고 연탄광까지
길게 한 줄로 늘어섰지요.
처음엔 웃고 떠들고 목소리가 높더니
어느새 아무 소리 안 들렸습니다.
힘이 들기 시작한 게지요.
잠깐들 숨을 돌리네요.
미숫가루에 빵을 쪄서 나갑니다.
“3분의 1은 했어요.”
“좀 더 해보면 요령이 붙어 빨리 돼요.”
애라도 해본 놈이 낫다고 아이가 열심히 예년의 경험을 들려줍니다.
다시 또 나래비를 섰지요.
처음처럼 목소리들이 컸는데,
목소리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남은 분량이 한 것의 두 배였는데,
정말 얼마 안 돼 끝이 나데요.
“이제 탄력이 붙는다...”
다시 트럭은 나머지 천 장을 실으러 가고
그 사이 사람들은 가마솥방으로 들어와서 요기를 좀 했지요.
호박부침개랑 유기농포도랑 또 뭘 먹었더라,
참이 밥상 같다 했는데...
다시 온 연탄의 절반은 금새 올리고
나머지 절반은 큰해우소 뒤란에 쟁였습니다.

젊어 좋데요.
팔팔한 젊은이들이 마당에서 공을 차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구, 힘들어.”
“그래, 그게(연탄 나르기가) 일이라니까.”
“그게 아니라 공 차느라...”
“힘이 넘치는구나.”
본관과 고래방 청소도 맡겼습니다.
저녁에 달골에 올라서는 창고동 정리도 부탁했네요.
얼마 전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청소를 못하고 있던 공간입니다,
욕실 수챗구멍의 머리카락을 보며도 건져두지 못하던.
그리고 한 밤,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국내공동체의 뒤란들, 그리고 물꼬의 현재가 주제였네요.
자정이 금방이었습니다.
어줍잖은 얘기보다 젊은이를 위한 글 한 편이나 읽어줄 것 그랬다,
아쉬움 조금 일었더이다.

태석샘도 하룻밤을 묵어갑니다.
“아이고, 가면 또 달날부터 근무인데, 낼도 예서 움직이고...
곤해서 우짜노, 쉬지도 못하고?”
“물꼬 다녀가는 게 쉬는 거지요.”
말이 또 고마운 그랍니다.

참, 오늘 닭장 아래 밭에서 무배추 뽑아 김치 담았습니다.
태석샘이랑 하다가 들고 왔지요.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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