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9.물날. 맑음

조회 수 1420 추천 수 0 2008.11.04 07:27:00

2008.10.29.물날. 맑음


양양에 계신 큰 스승 무운샘이 주신 짧은 글은
이렇게 끝이 나 있었습니다.
“심월상조(心月相照)합니다.”
심월상조...
조용헌 선생의 글이 생각나데요.
불혹(不惑) 넘으니
태양의 밝음보다 달빛의 유현(幽玄)함이 가슴에 들어온다던가요.
그래서 옛 어르신들은 그 즈음에
농월정(弄月亭)(달을 희롱한다)이니 소월정(笑月亭)‘달을 보고 웃는다’ 했다지요.
달을 감상하는 데도 단계가 있다 했습니다.
첫 단계, 천중월(天中月).
달을 보는 겁니다.
산중월 다음에는
물속에서 일렁거리는 달을 즐기는 수중월(水中月)이라지요.
수중월 다음은 심중월(心中月).
마음속에 있는 달을 발견하면,
만 리 밖에 있어도 심월(心月)이 상조(相照)한다 했습니다.
예, 선생님, 심월상조합니다.

논의 짚을 엮습니다.
몇 날의 일이 될 것입니다.
식구들에게 끈이 아니라 짚 몇 가닥으로 엮는 법을 일러줍니다.
어린 날 외할아버지 하던 걸 보았더랬습니다.
무섭습니다,
생애 한 장면이 그토록 선연할 수 있다니.
잘 살아야할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들이 보낸 시간들을 그리 기억할지니.
시작만 같이 하고 다들 제 일터로 뿔뿔이 흩어지는데,
벼가 다 넘어간 들에서
바람이 일어나는 들에서
아이와 중노인이 남아 볏짚을 묶습니다.
그 모습을 밀레의 만종을 보듯 쳐다보다 들어왔습니다.
초록색의 발견자라 불리던 콘스터블의 건초더미 그림도 생각나고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들도 겹쳐졌지요.

읍내에서 사람 하나 만났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사람 얘기가 또 절반입니다.
어떤 이의 소식을 듣네요.
“그 사람 참... 좋은 일 하데.
길에서 작은 장사를 하면서 이웃돕기에 백만 원도 척척 내고...”
“훌륭하네요.”
“그런데 또 그 동네 사람들은, 내가 그 사람 칭찬하면, 그게 또 아니라네.
시어머니한테는 또 그럴 수 없이 못되게 한다네.”
소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누구라도 공인이 되고는 합니다.
서로 사는 꼴이 빤한 거지요.
그래서 타인의 삶에 말도 많아집니다.
“왜 다 잘하기를 바래? 훌륭한 건 또 훌륭한 거지. 좀 내버려두라 그래요.”
그러게요,
좋은 일 한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지요.
우리는 타인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며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으윽, 이런, 이리 말해놓고 나니 바로 내 얘기일세...’)
어찌 살든, 그 삶이 윤리에 어긋진 게 아니라면
서로 좀 내버려두면 참말 좋겄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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