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4.불날. 맑음

조회 수 1099 추천 수 0 2008.11.14 12:24:00

2008.11. 4.불날. 맑음


넘들은 학교를 가는 아침에
우리는 학교를 나섭니다.
읍내를 가는 날이지요.
차가 출발하고 제법 달렸는데,
이런, 그제야 두고 온 벼루와 붓이 생각났지요.
돌아옵니다.
그때 아이가 뒤에서 다가와 나지막히 말합니다.
“엄마, 상황이 이렇더라도 천천히 가자.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가 없지만
한번쯤 늦는 것, 잘 못하는 것은 다음에 잘하면 돼.”
그렇겠습니다.
속도를 늦추었지요.

상담전화가 있었습니다.
물꼬를 방학 때마다 오는 아이들을 거두고 사는
그들의 친척아주머니이지요.
교사이기도 해서, 그것도 특수학교 교사여서
여러 정보를 전해주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함께 풍물패에 있기도 했더랬지요.
목 매단 부모를 본 아이들 얘기를 듣습니다.
그들에게 정녕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이 겨울에도 올 그 아이들을 위해 생각을 모아봅니다.
그래도 다행히 이곳에 오면
녀석들 표정이 어찌나 밝은지요.
그래서 또 이곳을 지켜야겠다 다짐하게 된답니다.

류옥하다는 꼬마 철학자입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이 누구나 그러하듯.
자주 목수샘이랑 티격태격하며 서로 깐작거리는데,
오늘도 무언가로 씨름이더니
나중에 그러데요.
“처음에는 팽팽했던 게 어색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팽팽한 관계가 유지되잖아요.
그러니 그 반대로도 안 될 것 없죠.”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나름 이 작은 규모에서도 사회적 관계에 대해 정의하고
해결법을 찾으며 잘 살아가고 있답니다.

물꼬의 마음공부를 도와주시는 분이
완도에서 올라왔다는 햇미역이며 다시마를 주셨습니다.
이 산골에서 얼마나 귀한 것들인지요.
유정란 초란도 두 꾸러미 챙겨주셨지요.
게다 옷가지며, 작은 선물들, 책들(그것도 요가 원서를)도 딸려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녁부터 감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내일 감타래에 걸 것입니다.
마른 바람을 안고 곶감이 될 테고
아이들의 겨울 저녁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지요.
하늘이 또 고맙습니다,
맑은 하늘이, 바람이.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82 2022.12.27.불날. 맑음 / 떡국떡을 더한 감동 다섯 옥영경 2023-01-08 272
6581 2024. 1.22.달날. 맑음 / 포트락 옥영경 2024-02-07 273
6580 2023학년도 2월 실타래학교(2.3~6) 갈무리글 옥영경 2024-02-13 273
6579 2022.11.18.쇠날. 맑음 옥영경 2022-12-16 274
6578 2022.12. 7.물날. 흐림 옥영경 2022-12-29 274
6577 2023. 2.22.물날. 맑은 낮이었으나 밤비 밤눈 옥영경 2023-03-19 274
6576 2022.11.25.쇠날. 맑음 옥영경 2022-12-24 275
6575 2022.12.18.해날. 맑음 옥영경 2023-01-06 275
6574 2024. 1.16.불날. 맑음 옥영경 2024-01-29 275
6573 2024. 1.30.불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275
6572 2021. 5.16.해날. 비 옥영경 2021-06-18 276
6571 2022.12.17.흙날. 펑펑 내리는 눈 옥영경 2023-01-06 276
6570 2023. 6. 1.나무날. 흐리다 비 옥영경 2023-07-18 276
6569 2022 겨울 청계 여는 날, 2022.12.24.흙날. 맑음 옥영경 2023-01-06 277
6568 2023. 2.10.쇠날. 흐림 옥영경 2023-03-07 277
6567 2023. 3.19.해날. 맑음 옥영경 2023-04-10 277
6566 2023.12.25.달날. 눈 멎은 아침 옥영경 2024-01-07 277
6565 2023.12.30.흙날. 비 옥영경 2024-01-07 277
6564 2024. 1.26.쇠날. 맑음 / '1001' 옥영경 2024-02-08 277
6563 2024. 4. 3.물날. 비 옥영경 2024-04-21 27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