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4.불날. 맑음

조회 수 1165 추천 수 0 2008.11.14 12:24:00

2008.11. 4.불날. 맑음


넘들은 학교를 가는 아침에
우리는 학교를 나섭니다.
읍내를 가는 날이지요.
차가 출발하고 제법 달렸는데,
이런, 그제야 두고 온 벼루와 붓이 생각났지요.
돌아옵니다.
그때 아이가 뒤에서 다가와 나지막히 말합니다.
“엄마, 상황이 이렇더라도 천천히 가자.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가 없지만
한번쯤 늦는 것, 잘 못하는 것은 다음에 잘하면 돼.”
그렇겠습니다.
속도를 늦추었지요.

상담전화가 있었습니다.
물꼬를 방학 때마다 오는 아이들을 거두고 사는
그들의 친척아주머니이지요.
교사이기도 해서, 그것도 특수학교 교사여서
여러 정보를 전해주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함께 풍물패에 있기도 했더랬지요.
목 매단 부모를 본 아이들 얘기를 듣습니다.
그들에게 정녕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이 겨울에도 올 그 아이들을 위해 생각을 모아봅니다.
그래도 다행히 이곳에 오면
녀석들 표정이 어찌나 밝은지요.
그래서 또 이곳을 지켜야겠다 다짐하게 된답니다.

류옥하다는 꼬마 철학자입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이 누구나 그러하듯.
자주 목수샘이랑 티격태격하며 서로 깐작거리는데,
오늘도 무언가로 씨름이더니
나중에 그러데요.
“처음에는 팽팽했던 게 어색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팽팽한 관계가 유지되잖아요.
그러니 그 반대로도 안 될 것 없죠.”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나름 이 작은 규모에서도 사회적 관계에 대해 정의하고
해결법을 찾으며 잘 살아가고 있답니다.

물꼬의 마음공부를 도와주시는 분이
완도에서 올라왔다는 햇미역이며 다시마를 주셨습니다.
이 산골에서 얼마나 귀한 것들인지요.
유정란 초란도 두 꾸러미 챙겨주셨지요.
게다 옷가지며, 작은 선물들, 책들(그것도 요가 원서를)도 딸려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녁부터 감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내일 감타래에 걸 것입니다.
마른 바람을 안고 곶감이 될 테고
아이들의 겨울 저녁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지요.
하늘이 또 고맙습니다,
맑은 하늘이,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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