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9.해날. 비 지나다

조회 수 1206 추천 수 0 2008.11.24 00:59:00

2008.11. 9.해날. 비 지나다


“하늘 한 번 보세요.”
거기 맑은 가을 하늘이 있었지요.
“오늘 교장 훈화는 이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이십여 년 전 진주의 어느 고교 조회 풍경입니다.
논두렁 문저온님이랑 나눈 얘기였지요.
줄 서지 않고 우르르 모여 하던 그 학교의 조회는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더랬습니다.
그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남긴 건
비단 색다른 조회에서만이 아니었을 테지만
그 조회만으로도 이십년이 넘어 된 학생의 가슴에
떨림과 울림으로 남은 걸 보면
분명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요.
대안학교가 어디 다른 곳에 있겠느냐 싶은 요즘이랍니다.
제도 학교 안에서도
얼마든지 빛나는 교실을 구현하는 예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존재야말로 얼마나 중요한지요.
참 낡은 표현이겠습니다만
제도 안에서도 새로운 학교를 구현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며
새로운 학교여도 말이 안 되는 교사가 있을 테지요.
중요한 건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이겠습니다.

무궁화를 옮겨 심습니다.
이곳의 11월은 나무들에게 자리를 잡아주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너무 간격이 좁아서, 혹은 넉넉하지 않은 자리에 너무 커버려서,
여러 가지 까닭으로 그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일을 하지요.
교육도 그런 일이지 싶습니다.

열택샘이 왔습니다.
물꼬 농사샘으로 공동체에 머물던 그였습니다.
처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착해 보였습니다.
아직은 우리말을 못하는 한족입니다.
짝을 찾고 일가를 이루니 보기 좋습니다.
잘 살기를 바랍니다.

삼을 캐고 돌아왔습니다.
매곡 넘어가다보면 영축사 들어가는 길이 있지요.
해마다 영동 지역 여러 곳을 옮겨가며
인삼을 키워내는 부농이 올해는 거기서 삼을 캐네요.
60여명의 인부를 불러 하는 일이라
실제 일을 도와주기보다 밥이나 한 끼 먹고 가라 부른 것이었습니다.
식구들이 같이 가서 인부들 틈에 자루를 나르고
두루기계가 갈아놓은 밭에 들어 놓친 건 없나 또 살핍니다.
그런데 인부들이 죄 빠져나온 곳을
기다렸다는 듯 들어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줍는 것은 그의 소유랍니다.
예부터 부농이 가난한 이들에게 준 시혜 같은 덕이었다지요.
사람들이 죄 훑은 곳을 낫과 호미 들고 들어가
제법 굵직한 것들을 더러 얻기도 한다지요,
마치 이삭 줍는 풍경처럼.
그걸 장에 내다 팔아 자식들 공부 가르쳤다는 이도 있다 했습니다.
어찌 어찌 다 살아지는 생이다 싶데요.

참으로 나온 떡과 한 아름 안겨준 인삼을 싣고
산길을 더 올라갑니다.
빈대를 잡으려다 타버린 영축사 전설이 있던 곳에
비구니 스님 둘이 다시 일으킨 지 십 수 년 된 절이 있다던가요.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엔 물여대마을을 가서
구아바 농장을 한다는 귀농한 할머니네도 들여다봅니다.
골짝 골짝 사람들이 깃들어 사는 일도 고맙고
그 사람들을 알아가는 일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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