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7.달날. 흐림

조회 수 1036 추천 수 0 2008.12.06 16:51:00

2008.11.17.달날. 흐림


조정선님이 하룻밤을 묵고 떠납니다.
이른 아침 마을과 계곡을 둘러보던 그가
밥상을 준비하는 손을 보태러 가마솥방을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훑고 간 학교가
다시 고요해진 아침이었지요.
소읍의 특수교사를 준비하는 그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품앗이로든 논두렁으로든 혹은 이웃으로든
걸음이 이리 오가면 좋겠다 서로 서원했지요.

마을을 빠져나갑니다.
장날도 아닌데 할머니들이 바삐 마을길을 걸어갑니다.
“어디들 가셔요?”
차가 없던 시절 버스 시간대가 아니면 물꼬 식구들 역시
그렇게 차를 세우고 다녔더랬습니다.
오가며 어쩌다 태워드리면
어차피 내려던 차비였다며 아이에게 쥐어주는 분도 계시고
무며 농사거리를 보내오기도 하시지요.
(그거 아니라도
늘 채소며 혼자 다 못다 먹는다 보내는 당신들이시랍니다.)
착한할아버지네 할머니도 태우고 수하네할머니도 오르십니다.
“보건소 약 타러 가지.”
인구가 줄면서 마을 보건소가 사라지니
약으로 지탱하시는 당신들이 여간 불편하지가 않지요,
보건소가 주말에 문을 여는 것도 아니라
자식들이 오는 주말에 차를 타고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말에 사람들이 많이 왔데...”
“배추가 늦어도 잘 컸데...”
좁은 산골마을이라, 또 학교가 가운데 있으니
학교 소식을 소상히도 알고들 계십니다.
“그래, 마늘은 안 심어?”
이야기는 으레 논밭으로 건너가지요.
배추 뽑고 심을란다 합니다.
“식구가 몇이나 있어도 작년에 마늘을 못 심었어요.
뭐이가 그리 바쁜지...
어찌나 아쉽던지, 마늘쫑도 못 뽑아먹고...
올해는 늦어도 배추 꼭 심을라고...”
“어따 심게?”
“배추 뽑고 심을까 하는데...”
“청송네 마당도 있잖여?”
곶감집 마당은 어떠냐,
하루라도 더 늦기 전에 뿌려라십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먹지요 뭐.”
때를 못 맞추는 것도 늘 안타깝고
비료조차 뿌리지 않는 엄격한 유기농이 또 답답한 할머니들이지만
격려도 잊지 않으시지요.
“그래도 내 손으로 먹으면 좋지, 농약도 덜 치고.”
당신들 삶에 견주며 역시 제 손으로 짓는 농사가 제일이라시지요.

아침에 잠깐 아이를 닦달한 일이 있었습니다.
없는 일도 아니지요.
그런데 때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지
파르르 몸이 떨렸습니다, 처음 알게 되기라도 했는 양.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곁에서 지킨 이 아이는
에미에게 크게 서운한 게 있습니다.
한 번도(?) 아이들에게 큰 소리 내는 걸 못 봤는데
자기한테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지 새끼에게 만만한 거지요.
아이가 힘이 없으니 아이에게 폭력적이기 쉽습니다.
많이 미안합니다.
경계해야겠습니다.

비가 든 주말이더니
영하권으로 내려간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면 산골살이는 퍽 긴장하게 되지요.
보일러는 그 편의만큼 걱정을 하나 늘렸습니다,
구들을 놓고 살던 그때는 없던 걱정이지요.
달골 보일러가 얼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방방이 창문을 점검하고
집마다 수돗물을 틀어놓습니다.
본격적으로 하는 겨울맞이 채비쯤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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