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30.해날. 맑음

조회 수 1220 추천 수 0 2008.12.21 15:31:00

2008.11.30.해날. 맑음


그리 자주 쓰일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시골살림에 없으면 퍽 아쉬운 게 바로 트럭입니다.
집안에서 얻어온 이 트럭을 살림을 분가하는 이에게 주고 났더니
여간 아쉽지가 않습니다.
쓰려고 해도 이제 남의 것이고 보니
이리저리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쉽잖지요.
어렵사리 엊저녁 남도로 끌고 간 트럭을
다시 제 주인에게 넘겨줄 시간에 맞추어 돌아오느라 서둘렀습니다.
트럭에는 친정나들이가 언제나처럼 그러하듯
굴젓, 무김치, 옥수수, 무말랭이들이 큰 김치통째 실리고
도가지째 된장 고추장도, 볕에 잘 말린 가지 무 호박 오가리들도,
그리고 메주도 실려 왔지요.
나무도 여러 주가 뿌리째 실리고
시골집 화단을 메우고 있던 꽃들도 실립니다.
남아있는 식구들을 위해 회도 챙겨주셨습니다.
항아리와 나무들과 책장, 솥단지와 그릇들에
가보 같았던 귀한 책도 몇 권,
그리고 배추둥구리가 마지막으로 실렸지요.


배추둥구리


옷 버릴라,
벼 벤 논둑길을 걸어가는
말쑥한 외출복의 딸과 손자 뒤로
구부정한 노인네
양쪽으로 배추 둥구리를 끼고 걸어갑니다

잘라 주께,
흙 묻은 뿌리를 벤 칼을 쥔 채
어여 가라 어여 가라 흔드는 손

절만 하다가 하루해가 지겄네,
방문 앞에서 현관 앞에서
밭둑 끝에서 차 앞에서
외가가 뵈지 않는 모퉁이에서
아이는 또 한 번 건강하시라 절을 합니다.


그리고 대해리 주말의 영화 상영,
<영화는 영화다>.
2008년은 걸출한 <추격자>로 문을 열었고
그만큼 걸출한 <영화는 영화다>로 문을 닫았다고들 했지요.
김기덕 감독 냄새가 물씬 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김기덕 각본(제작자이기도 하고)에 장훈 감독이데요.
하지만 대중적이었습니다,
꼭 배우들이 대중적인 배우여서가 아니라.
tv 브라운관의 청춘스타들을 배우로 거듭나게 했다는 평에 걸맞았지요.
‘리얼과 영화 사이를 넘나드는 두 캐릭터의 교차는
영화처럼 살고 싶은 우리가 영화 같지 않은 현실을 살며
결국은 지쳐 괴로워하는 틈새를 파고드는 쉼표 같은 존재들이다.’
어느 평자의 말에도 공감이 갔습니다.
배우들도 애정을 갖고 투자를 하며 만든 영화라던가요.
내내 ‘영화배우’는 흰색으로 ‘깡패’는 검은색으로 나오던 의상이
마지막 3분의 엔딩, 셔츠 색이 뒤바뀌어 나옵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영화는 영화이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아, 소름끼치는 배우들의 탄생이 거기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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