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 2.불날. 맑음

조회 수 1271 추천 수 0 2008.12.26 13:11:00

2008.12. 2.불날. 맑음


큰 해우소를 가다가
이엉을 얹은 김치광을 건너다보았습니다.
김장하던 날 오전에 새끼를 꼬았더랬지요.
아이도 어른들 속에 같이 난롯가에 앉아 꼬았습니다.
지푸라기가 쉬 끊이지 않는 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늘 하면서도 신기합니다.
짚을 가려 미리 물을 먹여 축이고
손바닥에 침 뱉어가며 꼬시던 할아버지처럼 대신에 물 한 사발을 가져다 놓고
적셔가며 짱짱하게 손을 마주 비벼 꼬아 가면
거친 일에 익숙지 않은 손은 머잖아 벌개지고 시려오지요.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거기 새끼줄이 컨베이어벨트의 마지막 과정에 나온 생산물처럼 있습니다.
그걸로 김치광 지붕을 잘 붙들어 매두었지요.
온 겨울이 다 푹해지데요.
북쪽으로 트여 있는 이 골짝 바람에도 견실할 겝니다.

마늘을 한 쪽씩 떼기 시작했습니다.
심으려지요.
배추를 뽑아낸 밭에 심을 것이라
이제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본관 뒤란 흙집에 대한
(‘샤워실증축’이라 이름하고 있습니다.)
군청과 교육청의 협의문이 작성되어 순조롭습니다.
그래도 또 우리가 할 일이 있지요.
(서류상의) 다음 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무 오래 애먹었습니다.

지독하게 앓습니다.
어제부터 조짐이 보였지요.
아마도 감기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김장 몸살쯤 되겠습니다.
주중에 매달린 일이 있어
주말이면 대해리 안에서 일을 몰아하느라
몇 주를 좀 무리하게 움직여 왔던 터입니다.
김장만 해도 그럴 것인데,
먼 길까지 다녀왔고.
문득 죽은 이들이 생각나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를 잃고 할머니를 잃고
선배가 고문에 죽어갔고
친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며
아는 후배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지고...
그만치 크게 앓은 적 없는 최근이어서 그랬지 싶습니다.
이뉴잇들 삶에서 죽은 자를 보내는 의식도 불현 듯 생각나데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다 같이 모여서
닷새 동안 그 사람 얘기만 한다지요.
얘길 하며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지요.
그러고 나선 다시는 얘기하지 않는답니다.
자꾸 얘기하면 그 영혼이 가야할 데를 못 가니까.
이제 떠나간 이들 얘기를 말아야겠구나, 훨훨 털어야겠구나 싶데요.

혼절할 만치 앓던 몸으로 끌고 오던 차는
산길에서 오른쪽 바퀴 둘을 수로에 다 빠뜨렸습니다.
뒤에 있던 아이가 더 놀랬지요.
등 뒤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 딴엔 열심히 목이며 머리를 눌러주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어서 내려요.”
혹 차가 폭발하기라도 할 새라 아이가 가슴 졸이며
어른 못잖은 대응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자라
이제 그렇게 어른 삶을 한 부분씩 자기 무게로 가져가는구나 싶더이다.
식구 하나가 달려오고,
견인차가 오고,
요란한 저녁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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