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 3.물날. 맑음

조회 수 1212 추천 수 0 2008.12.26 13:19:00

2008.12. 3.물날. 맑음


마늘밭을 팼습니다.
저 한 뙈기 밭이 우리에게 고추도 주고 배추도 주고 무도 주고
그리고 이제 마늘을 키워낼 것입니다.
작년에 마늘을 심지 못해 어찌나 아쉽던지요.
종대샘이 팬 곳을 다른 식구들이 두둑을 만들었습니다.
먼저 한 고랑만 오늘 심었지요.
아이가 맡아준 일입니다.
“심을 수 있겠어?”
“엉덩이가 아래로 오게 하면 되잖아.”
그 순간 저도 이해가 되어버렸지요.
아하, 그걸 엉덩이라 부르니 딱입니다.

아직 계절학교 안내를 내지 못하였지만
벌써부터 구두로(물론 신청절차를 또 밟지요) 신청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구미의 한 동료교사도 계자에서 아이들을 데려가면서
벌써 다음 계절을 바로 예약한다 소리치고 떠나시지요.
아이들의 사촌이 오고 그 친구가 오고
그렇게 식구들을 늘여가며 오던 그네랍니다.
그런데 그이로부터 오늘 연락입니다.
“내 새끼만 보낼 수도 없고...”
모자가정인 동서네 아이들까지 챙기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이들 앞에 삶을 스스로 마감한 흔적을 보이고 떠난 남편을
지금도 그의 아내, 그러니까 그 동서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합니다.
동서는 아이들에게도 학교에서든 어느 모임에서든
절대 아비 없단 말을 못하게 한다지요.
그런데 물꼬에 소상하게 아이들 상황을 전했다고
막 화를 내고 우는 동서를 보며
홧김에 그러면 이제 너 알아 아이 키우라셨다던가요.
그 역시 교사라
교사가 충분히 아이들 정보를 갖는 게 더 아이를 돕는 일이겠다는 판단으로
그들의 얘기를 들려주어 왔던 것인데
그 동서에겐 그게 또 상처였나 봅니다.
아이들도 아비 없다는 말을 자연스레 할 수 있어야지 않겠냐,
그래야 아이들도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 아니냐,
혼자 애가 탄 그이가 하소연하는데
조카들을 생각하는 그이도,
제 사정을 바로 말하지 못하고 아직도 아픈 그니도,
그들을 다 이해하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을는지요.

아직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있기 마련입디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심경변화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단 말인가, 아닐거야 하고 부정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신에게든 사람에게든 분노하고
그리고 아이를 위해 병원을 순례하며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다
겨우 인정에 이르는 협응(?coordination))의 단계를 지나
비로소 그 아이에게 맞는 중재를 찾고 깨달으며 수용하는 단계,
우리 삶에 일어난 받아들이기 힘든 다른 상황도
다르지 않는 경로를 밟을 테지요.
단계(? 개인차가 있겠지만)에 맞는 적절한 자극을 주는 것도,
다만 기다리는 것도,
옆에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들의 몫이겠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이 물꼬에 와서 마음이 펴진다고 여겼던 그 동료교사도,
역시 어둔 얼굴이 더욱 펴지는 그들을 보며 므흣했던 저도,
그 아이들이 올 겨울을 넘기고 다음 여름날에는 함께 할 수 있길
그저 바란다지요.

달골의 감을 미처 못다 따고
가을이 넘고 겨울마저 깊어버렸습니다.
곶감 농사를 하는 이들은
그 감이 꽤나 아깝기도 하였겠지요.
윗마을 돌고개 정해영아저씨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내년부터 달골 감나무 세 그루를 자기에게 세를 주면 어쩌겠냐 물어왔지요.
그러면 감나무도 농약을 치게 될 테고
그 아래 제초제도 막 뿌릴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접점을 찾아
그가 내년에 감 따는 일을 돕고 감을 얻어가기로 하였답니다.
우린 감을 따서 좋고 그이는 감이 생겨서 좋은 게지요.

“공부할 시간 없으면 요약해 줄까요?”
무지 앓고 있는 것을 본 데다 일상에 널린 산더미 일들을 보며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보내온 문자입니다.
내가 이런 복을 다 누리네,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살아지는 거구나 싶데요.

홍콩 갈 준비라면
아이랑 남아있을 식구들 밥상 준비겠습니다.
늦도록 냉장고를 채우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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