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3.불날. 갬

조회 수 1105 추천 수 0 2008.12.29 16:45:00

2008.12.23.불날. 갬


여긴 눈이 오네 마네 하며 하늘만 조금 뿌žR는데
당진이던가는 눈이 제법 내려 길 나서기가 불편했다 합니다.
지역에 계신 어르신들 틈에서 아이는
지난 한 해 붓을 잡았더랬습니다.
오늘 그 곳 어른 몇 분이랑 읍내에서 점심을 먹자 하였는데,
정작 선생님이 움직이시질 못하게 되어 아쉬웠지요.
먹이랑 함께 하는 시간은 산오름 만큼이나
이곳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공부입니다.
먹을 갈며 흰 종이 위로 검은 점과 선을 긋는 것이
바깥으로 자주 뛰쳐 내달리는 마음을
안으로 들이는 훌륭한 길이 되기도 합디다.
“먹을 갈고 붓을 들고 있는 동안은
용서와 사랑의 감정이 인다.”
그리 표현하신 분도 계시지요.
먹을 갈면 숨이 가다듬어지지요,
무수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마음 호수도 잔잔해지지요.
어른들 틈에서 차를 타고 먹을 갈고 글씨를 쓰면서
아이도 한층 자랐답니다.
손주뻘 아이랑 세상 얘기도 하고
당신들 살아오신 날들도 전하신다 들었습니다.
그렇게 어르신들이 아이를 같이 키워주고 계십니다.

“종대샘, 우리 샤워 같이 해요.”
며칠 동안 남자 식구들은 흙집 목욕탕을 쓰는 일에 재미 붙였습니다.
아이도 저녁이면 어른을 붙들지요.
“젊은 할아버지도 해보세요.”
“물이 어찌나 뜨끈뜨근한 지... 옥샘도 해봐요.
여자 욕실도 개시해야지!”
하여 드디어 써봅니다.
아이들이 오기 전 점검도 해두어야 하고.
도시같이 하지 않겠다고 문 아래 위로 바깥 바람도 잘 오가게 하였는데,
그런 만큼 좀 춥기도 하다 싶었지만
건물이 두꺼운 흙벽인 만큼 바닥 온돌까지 돌면 훈훈하겠데요.
무엇보다 건물의 기운이 참 좋습니다.
훗날 용도를 좀 바꾸어 해우소 칸을 빼고
아이들 놀이찜질방을 만들면 어떨까 상상해보고 있지요.
가난한 산골살림은 으레 익숙하게 써왔던 모든 것에
고마움과 감사함을 갖게 합니다.
이 겨울 난로가 그러하고 아궁이불이 그러하고
따뜻한 물이 더욱 그러하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854 2014. 5.20.불날. 종일 몇 방울의 비 옥영경 2014-06-07 671
1853 2014. 4.23.물날. 맑음 옥영경 2014-05-23 671
1852 2013. 8.1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3-09-02 671
1851 2013. 7.1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3-07-28 671
1850 2021. 8.22.해날. 맑음 / ‘멧골책방’에서 책 대신 잔디 옥영경 2021-08-29 670
1849 2019. 3. 1.쇠날. 미세먼지로 긴급재난문자가 울리는 옥영경 2019-04-04 670
1848 2016. 7.16.흙날. 비 옥영경 2016-08-06 670
1847 2016. 6. 7.불날. 흐린 옥영경 2016-07-06 670
1846 2016. 6. 3~4.쇠~흙날. 뿌연 하늘, 그리고 비 옥영경 2016-07-06 670
1845 2015.10.30.쇠날. 맑음 옥영경 2015-11-23 670
1844 2015. 9. 8.불날. 맑음 옥영경 2015-10-01 670
1843 2015. 5.25.달날. 맑음 옥영경 2015-07-06 670
1842 2015. 4.24.쇠날. 구름도 가끔 섞인 맑은 옥영경 2015-05-30 670
1841 2015. 3.11.물날. 좀 수그러드는가, 바람 옥영경 2015-04-16 670
1840 2014.12.17.물날. 오후 눈 옥영경 2014-12-31 670
1839 2014. 6.30.달날. 맑다기엔 좀 옥영경 2014-07-16 670
1838 2014. 2. 9.해날. 눈 옥영경 2014-02-28 670
1837 2019. 4. 3.물날. 맑음 / 아비의 마음 옥영경 2019-05-07 669
1836 2016. 3.11.쇠날. 맑음 옥영경 2016-03-31 669
1835 2015.10.28.물날. 맑음 옥영경 2015-11-23 66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