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5.해날. 내리고 또 내리는 눈 / 설

조회 수 1625 추천 수 0 2009.02.05 00:06:00

2009. 1.25.해날. 내리고 또 내리는 눈 / 설


설입니다.
어릴 적 벽에 걸렸던 달력의 1,2월은
꼭 이런 눈 덮인 산마을을 담고 있어
사진으로 더 풍요로왔던 정초가 되고는 하였더이다.
그렇게 눈이 내리고 또 내리는 설입니다.
가만히 들앉았기에는 좋으나
멀리서 오고가는 걸음들은 어려움 클 것인데
명절 쇠러 온다던 식구들이 무사히 들어왔습니다.
종대샘이 서울서 전주 본가를 거쳐
기차 타고 온 소정샘을 실어왔네요.
전주에서는 예서 할 것도 없을 만치
설음식을 챙겨 보내주셨습니다.
때마다 김치며 명절 음식들이며를 받습니다.
솜씨 좋은 어르신의 음식은
며칠을 두어도 맛이 깊습니다.

둘러앉아 새해 첫날밤을 맞습니다.
여러 곳에서 설 인사들이 문자로 넘칩니다.
고마운 인연들입니다.
무수한 얘기들이 밤마을을 채웁니다.
유설샘이 보내준 양초를 가운데 밝혔습니다.
한 해 동안 다시는 말을 잊어도 좋을 만치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좋은 이야기들이 넘쳤습니다,
때로는 사람살이가 얼마나 졸렬하던가에서부터
장엄하기까지 한 인생사들에 대해서도.
모여 앉아 영화도 봅니다.
산골에서 잠 못 드는 밤입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태어나서부터 단 한 차례도 뭍을 밟은 적이 없는 피아니스트,
말 그대로 전설입니다.
어느 한 순간 배에서 내리려던 때가 있기는 하였지요.
“그런 도시에서는 끝이란 찾아볼 수도 없어.
끝!
그게 어디서 끝나는지 보여줄 수 있어?”
배에서 내리려던 그는 다시 사다리를 되돌아 타고 오릅니다.
“... 날 막은 것들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었지.
사방으로 뻗은 도시에는 끝이란 게 없었어. 세상의 끝 말이야.
모든 것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지.”
피아노는 시작하는 건반과 마지막 건반이 있지요.
88개의 건반이 있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했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계속 말합니다.
“건반은 유한하지만, 자네는 무한하지.
88개의 유한한 건반에서 자네는 무한한 음악을 만들 수 있어.
난 그 점이 좋아. 내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지.”
그리고 묻지요.
“그 거리들을 봤어? 수천 개의 거리를 말이야. 어떻게 그곳으로 내려가서,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할 수 있지? 한명의 여자, 하나의 집, 자네 땅 한 줌, 하나의 풍경, 오직 한 종류의 죽음.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세상은 자네를 짓누르고 있다구. 그런 거대한 곳에서 산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정말 몸서리칠 정도로 무섭지 않아?”
예, 그는 내리지 않겠답니다.
“나는 이 배에서 태어났어. 세상이 나를 거쳐 갔지 ...이곳에는 희망이 있었어...하지만 그런 희망은 배에서만 존재할 수 있어. 뱃머리에서 선미까지. 무한하지 않은 피아노에서 너의 행복을 연주했었지. 내가 배운 것은 그렇게 사는 거야. 육지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배야.”


지난해도 그리 살았습니다.
새해에도 수많은 연들이 만들어주는 그늘,
혹은 다사로운 햇살로 가난하지 않을 테지요.
아름다운 그대들,
새해, 웃는 날들 많으소서.

“2009년
밤이면 불 밝고 낮이면 물 맑아
천리소문 만리광문 소원성취 발원합니다.”

정기효샘이 보내준 글귀로 다시 두루 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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