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4.물날. 맑음

조회 수 1109 추천 수 0 2009.02.13 19:44:00

2009. 2. 4.물날. 맑음


입춘입니다.
바람이 달지요.
양지쪽엔 벌써 냉이가 덮고 있습니다.
학교둘레 도랑을 칩니다.
낙엽을 긁어내고 배수로를 확보하지요.
긁은 낙엽들을 거름장으로 옮깁니다.
거기 모아둔 오줌을 붓지요.
밭에 쓰일 거름들이 될 것입니다.
아이도 바쁩니다.
자갈과 흙을 가져와 사택으로 오르는 계단을 손보고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 눈으로 보고 필요한 일들을 합니다.
이곳 삶의 한 몫을 하며 자라고 있지요.

아이가 즐겨보는 의학드라마가 하나 있습니다.
영화가 귀한 산골에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더러 챙겨다주는 이들이 있지요.
천재이나 냉소적인 이가 등장하고
따뜻한 품성의 그의 친구가 등장합니다.
환자의 보호자 동의를 구하는 장면에서
친구가 등장했습니다.
“사람 다루는 재능이 탁월하군.”
천재가 비아냥거렸지요.
“전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남들과 진짜 대화를 하죠.
그러면 정말 놀랍게도 사람들이 협조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지더라구요.”
진짜로 대화를 한다?
그거 잊은 지 수년이지 않나 싶은 반성이 일었더랍니다.

2월입니다.
이 달이 다 가면 다시 3월,
그러면 다시 새학년도가 시작이지요.
교무실일은 거의 손을 놓고 있던 한 해였습니다.
잊지 않고 이곳 살림을 챙겨주고 있는 논두렁 명단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었지요.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하고 자료를 남기는 이들도 있지만
그냥 입금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때로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는데 변함없이 보내오기도 하시지요.
오늘 지난 달 논두렁 이름 가운데 새 이름자 하나 보았습니다.
낯익은 이름입니다-김진업.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때 그는 초등 4학년 남학생이었습니다.
은사님의 조카들 가운데 하나였지요.
참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서로 살기 바쁜 어른이 되고나서는 뜸했습니다.
그런 그를 논두렁 통장에서 발견한 거지요.
다른 나라를 돌던 시기와 돌아온 뒤,
그러니까 2001년 이후로는 연락도 멀었더랬습니다.
작년 8월 오랜 고시생활을 끝으로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은사님께 전화넣고야 알았지요.
잊지 않고 있고 그리고 생각한 것을 그리 하는 것,
오늘 그가 절 자극했습니다.
마음에 담아주어 고맙고,
담아준 대로 움직여 또 다른 이의 마음을 깨운 그가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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