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7.흙날. 흐림

조회 수 1336 추천 수 0 2009.02.13 19:45:00

2009. 2. 7.흙날. 흐림


이른 아침 대해리를 나섭니다.
혼례식에서 쓸 슬라이드편집이 좀 늦어지기도 했고
그리고 신랑신부에 대한 얘기로 밤이 늦었던 지라
모두 설친 잠이었지요.
“어려운 자리 가려니 간밤에는 뭘 입을까가 다 걱정이 되더라.”
결국은 평소 입고 다니는 옷, 그거 말고 별 것도 없어,
긴 치마와 십년이 더 돼 손목이 해진 스웨터를 입고 나섰답니다,
이런 사람인줄 이미 알고 부른 그들일 것이므로.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유설샘과 미루샘이 혼례를 올립니다.
좀 이르게 도착한 터라 미장원도 갔지요.
자리가 자리인데 그냥 가는 게 아니라는 기락샘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습니다.
“이건 동네 반찬 사러 가는 머리지, 주례 설 사람 머리가 아니지.
화려한 거 그런 거 안 좋아하시는 분인 줄 알겠으니까 가만 계세요,
다 알아서 해드릴게.”
미용실 주인도 한소리 합니다.
화장품도 꺼내오셨지요.
“눈썹도 그리고 입술도 발랐는데...”
“거의 맨얼굴이네. 가만있어요, 이건 그냥 서비스야.”
정말 검소하게 머리를 잘 정리해주셨고
적당히 치장도 해주었지요.
“신랑말을 들어야 한다니까...”
양양한 기락샘의 목소리가 뒤에 걸어왔지요.

하나둘 혼례식 신부대기실 앞으로
물꼬 식구들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곧 혼례식을 하는 정순이와 승아가 청첩장을 전하러 오고
새끼일꾼 선아 지윤 소연 선주 아람 지희 수현 그리고 인영 세영,
품앗이일꾼 희중샘 서현샘(수민샘 소희샘 현애샘은 나중에)
신랑각시의 후배들이기도 한 소정샘과 성훈샘
그리고 공주에서 진달래님도 함께 하셨지요.
거기 대해리에서 올라간 기락샘 삼촌 하다 그리고 제가 더해졌습니다.
혼례는 그렇게 사람들을 모아주는 자리이기도 합디다.

주례를 섰습니다.
지난 가을 두 사람과 오가는 혼례 이야기 이후
그 준비일정(사실 날을 보낸 것 말고 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에 함께 하며
혼례란 게 얼마나 큰일인가를 새삼스레 생각했지요.
“신랑신부만 있음 됐지.”
“자기가 결혼해?”
결혼식이라고는 통틀어 일생에 다섯 번이면 많이 갔을 것이니
준비부터 혼례의 전 시간에 함께 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지요.
그런데 두 사람 생의 중요한 지점에 동참하며
얼마나 가슴 벅차던지요.

“한 10분 쓸거야. 영상물에 4분, 내 말에 5-6분.”
사회자에게 미리 그리 일러준 대로
먼저 준비한 영상물을 보여주었고 주례사를 읽었습니다.
주례사와 여자의 치마는 짧을수록 좋다던가요.
형식적이기 쉬운 게 또 주례사라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으려나 하였는데
젊은 하객들이 많아 그런지 너무 열심히 빤히 쳐다봐서
순간 당황해 말을 잃기도 하였지요.
늘 오늘 같이 설레기만 하겠느냐 건조할 때도 윤기를 더하며 살아라
주례에 어린 나를 세운 것도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살겠다는 거 아니냐
생각한대로 그리 살아라,
서로에게 정녕 편이 되어줘라 그런 말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한 우리들은
이들이 잘 살도록 지켜줄 의무가 있잖겠냐고 덧붙였지요.
“주례선생님과...”
사진을 찍기 시작하며 신랑신부 앞으로 주례를 맨 먼저 부를 때
비로소 주례의 무게가 다가와 얼굴이 붉어졌더랍니다.
“자, 이제 신랑신부 친구분들...”
사람이 너무 많이 친구들 사진은 셋으로 나뉘었습니다.
덕분에 물꼬 식구들은 따로 모여 사진에 담겼더라지요.

예술의 전당도 잠시 들렀습니다.
홍신자선생의 <순례자>를 보았지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든지 우리 삶 자체가 순례이며, 우리들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영적 깨달음을 찾아 다니는 순례자들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종희샘이며 여윤정샘이며 평화활동가들이 많이 자리해서
오랜만에 얼굴들을 뵈었습니다.

영등포역에서 다시 만난 열댓은 저녁을 먹었지요.
“서울사람!”
우리들의 그날 인사는 그러했습니다.
“이러고들 다니는 구나.”
높은 구두에 화사한 화장에 날개 같은 옷에,
산골에서 후줄그레하게 보는 계자와 달리
이곳은 또 그리 살고들 있었지요.
“옥샘도 오늘은 서울 사람이네.”
밖에서 같이들 먹는 밥은 또 별스럽데요.
그리 얼굴들 보아 좋았습니다.

내려오는 편에 미선샘이 함께 왔습니다.
3월부터 꼭 세 달을 물꼬 일을 도우며 귀농을 준비할 그입니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아니고 학교에 대한 관심도 아니고
그저 시골생활을 먼저 내려온 이들 곁에서 준비할 거랍니다.
우리가 크게 나눌 것이야 없는 줄도 이미 알고
물꼬에 ‘자원봉사’하며 흙에 발 담아본다지요.
11월부터 조율해왔던 일이네요.
지난 겨울 계자도 함께 하였습니다.
실상사귀농학교며 나름 준비도 한 그인데
몇 해 더 서울 생활을 이어갈 남편과 박자를 맞추자면
귀농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더라며 우선 시작해본다는 첫걸음이지요.
며칠 묵으면서 함께 지낼 시간에 대한 움직임을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소정샘도 청주 가는 길이어
조치원까지 같이 기차를 탔네요.
정말 새 학년도가 코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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