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11.물날. 맑음

조회 수 1061 추천 수 0 2009.02.24 22:36:00

2009. 2.11.물날. 맑음


“무엇이 가장 어려우셨습니까?”
물꼬 일을 해오며 지난 이십여 년을 돌아본다면
어떤 일이 가장 어렵더냐는 질문을 더러 받지요.
때마다 달리 대답했던 듯한데
최근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폭력성이 가장 두렵습니다!”
내 안에 폭력이 스며 나올 때 말입니다.
매만이 폭력이겠는지요, 어디 주먹만이 폭력이겠는지요.
말도 있고,
말 아니어도 감정과 분위기가 또한 그것일 겝니다
(그것도 지 새끼에게 가장 크게 그 폭력을 휘두른다 싶습니다.).
결국 가르치는 자의 길은 무엇을 가르치는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자기수행이 먼저겠다는 거지요.
아, 부모도 다르지 않겠습니다요.

멀리 진주에서 벗이 전화를 했습니다.
아이를 통해 만났고,
그리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가끔 좋은 시간에 좋은 느낌들을 나누는 그입니다.
그가 일이 있어 전화를 해올 때도
마치 내가 할 말이 있어 한 전화라도 되는 양
말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외로웠던 모양이라고 자신을 바라보지요.
그러면 그는 또 그걸 다 듣고 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 들었지요,
나야말로 이 산골에서 외려 사람들을 기대고 살고 있구나 하는.
‘나는 사람들을 기대고 산다!’

어제 아이랑 지역에서 불리고 있는 일노래를 배우던 참인데
선생님께서 어느 구절을 읊조리시다
옛 얘기 하나 들려주셨습니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당신이신데
일찍 글을 깨쳐 읽음새도 적지 않으시지요.
서까래가 나팔을 불렀다(해 넣지 못해)던
황희정승의 가난에 얽힌 얘기 한 자락인데,
상납도 다 물리치고 썩달걀(부화안된 달걀) 하나 거두었더라는
그 청렴의 이름 황희가 임종 앞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셔도 못살았는데
아버지 돌아가시면 어찌 사냐 아들이 울자
‘공제비는 낮거미줄로 거둬먹고 살거나...’ 했더라나요.
그 즈음 명에서
조공으로 공작새를 살 통통 찌워 보내라 하였답니다.
아비 남긴 말에 기대 공작새를 그리 멕여 보내니
명이 크게 놀라며 조선을 얕잡지 못하였다던가요.

‘나랏님께 상납을 하고’라는 노래구절 덕에 들은 얘기였지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아직 힘이 있음은 고마운 일입니다.
이 세대들이 떠나고 나면
정녕 우리의 정신과 기술들은 어찌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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